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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May 15. 2021

육아라는 스타트업

어제는 공부를 못하는(엄마의 말이나 실제로 얼마나 못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이 엄마의 고민을 들었고, 오늘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 엄마의 고민을 들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부모는 불안하고 조바심이 나나 보다. 나는 아무런 답을 줄 수 없었다. 하긴 답이 있기나 한 걸까? 혜안을 기대하는 듯한 그들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나는 듣기만 하거나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같이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듣고 공감해 주는 것밖에 없었다. 게다가 학부모가 자녀 이야기를 하면 교사 입장에서 의견을 말씀드릴 수 있지만, 어제와 오늘 이야기 나눈 사람들은 모두 동료 교사였기 때문에 더욱 할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 친구의 딸은 새벽 4:30에 일어나서 수학 숙제를 했다. 그럼에도 오전에 수학 학원에 가는 차 안에서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물론 아이가 어젯밤에 연예인 영상을 보지 않고 숙제를 했더라면 몸도 덜 힘들고 숙제도 다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안타까움과 속상함에서 나온 꾸중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나이인 우리 아이는 오늘 아침(?) 10시가 지나 일어났는데,
“어떻게 깨우기 전에 일어났어?”
라는 말을 듣고 씩 웃었다. 낮에는 친구와 게임을 하고 여름옷을 사러 밖에 나갔다가 예능 TV 시작할 시각에 늦겠다며 부랴부랴 들어왔다.

“애를 왜 그렇게 키우냐?”
“그러면 안 되지.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하는 말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난 오은영 박사님이 아니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툭하면 흔들리기 십상이다. 다만 내가 지키고 싶은 두 가지는 있다. 집은 아이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나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밖에 나가면 말수가 적고 얌전한 편이지만 집에선 말도 많이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장난도 잘 친다. 예전엔 춤도 많이 췄는데 사춘기가 되니 몸을 잘 안 움직이려 한다. 물론 밖에 나가서도 유머감각과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인싸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에서 보이는 모습을 밖에서도 보인다면 친구들이 더 호감과 편안함을 느낄 것 같다고 말해보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가 보다. 그나마 집에서라도 무장해제가 돼서 편안해하는 모습이 다행스럽다. 물론 집에서 숙제나 공부도 하고 잘못할 때는 꾸중도 듣지만 기본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에선 편안하고 웃을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수학 과목에서 ‘양’을 받은 적이 있다. 영어로 치면 D인 셈이다. 수학 머리가 없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지금 수학 문제를 풀면 풀리는 것이 많고 심지어 재미있다. 그래도 내가 수학을 못했었기 때문에 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면 멋지다고 말한다. 지금 내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있는데 아이가 설명해 주면 나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본다. 어쩌면 그래서 아이는 나와 수학 공부하는 것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고마운 일이다.

능력이 뛰어나 국제중에 다니는 친구 딸의 스케줄은 놀라웠다. 아이가 참 기특하고 장래가 촉망된다. 하지만 나도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내 아이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킬 생각이 없다. 자녀는 충분히 부모의 능력을 넘어설 수 있지만 그것은 축하하고 격려할 일이지 당연하게 요구하고 기대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워낙 실수가 많았기 때문에(여전히…) 자녀 교육에 좋은 점이 있다. 아이가 실수를 해서 속상해하거나 죄송해하면 엄마는 그보다 더한 실수도 했다고 말해 줄 수 있다. 그 당혹감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는 내 말을 듣고 놀라거나 웃는다. 실수는 앞으로 더 주의할 일이지 혼날 일은 아니다. 실수와 잘못은 구분되어야 한다.

육아는 스타트업이다. 누구나 부모는 처음이고 첫 아이는 처음 키워 본다. 모험과 신비의 세계다. 아이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부모가 바라고 기대하는 대로 되지도 않는다. 내 속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만큼 나와는 다른 점을 발견할 때도 많다. 그래서 부모가 어떤 확신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기란 어려운 것 같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늘 고민과 불안이 뒤따른다. 자식 잘되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서로에게 위안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도록 유지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 birgitloi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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