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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May 31. 2021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질 때

박성우, <마음 곁에 두는 마음>을 읽고

그대에게 빈틈이 없었다면
나는 그대와 먼 길 함께 가지 않았을 것이네
내 그대에게 채워줄 것이 없었을 것이므로
물 한모금 나눠 마시며 싱겁게 웃을 일도 없었을 것이네
그대에게 빈틈이 없었다면


작가의 말처럼 ‘빈틈’이라는 말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고 알 수 없는 여유도 느껴진다. <마음 곁에 두는 마음>은 시집, <난 빨강>의 저자 박성우가 썼다. 2~3쪽의 짧은 일기 같은 에세이 글들에는 시인의 빈틈 많은 삶과 그 빈틈을 채워주는 앵두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예쁘게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글을 잘 쓰려면 작가가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글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작가와 그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는 따뜻한 손길과 시인에게 순간순간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한 마음들이 담백하게 담겨 있다. 아, 오후 세 시의 고양이를 빼놓을 수 없으니 주변 ‘사람들’만은 아니다. 시인이 자신을 찾아오는 고양이를 대접하는 모습은 고 권정생 선생님을 떠올린다.

정읍 시골마을의 풍경과 인심이 눈앞에 그려진다. “아, 상추도 좀 뜯어다 먹고 풋꼬치도 좀 따다 먹으랑께, 뭔 사람이 요로코롬 말을 안 듣고 근디야!” 같은 사투리도 한몫한다. 시인의 유년시절이 있고, 노모가 계시고, 어릴 적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는 곳에서 작업실을 얻어 글을 쓰면서 시인은 참 마음이 풍족할 것 같다. 고향을 떠나 도심의 변두리에 머물며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생활을 하는 사람한테서는 이런 글이 나오기 힘들 것 같다. 글은 맑고 아름답고 여유가 있다.

산골 초등학교의 1기 보이스카우트 대원으로서 2박 3일의 하계 캠프에 참여할 때, 열네 명의 대원들이 여섯 명의 엄마들을 대동한 채 검게 그을린 솥단지와 화덕을 챙기고 쌀자루와 국거리와 장작 다발까지 준비해 정읍으로 나가는 시내버스에 싣고 길을 나서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터졌다. 핫따, 선생님. 우리가 없으면 몰라도 저 째깐한 것들한티 어찌케 설거지를 시킨다요. 이렇듯 다른 학교 대원들과는 달리 밭매던 엄마들이 와서 해주는 밥을 매끼 먹으며 지냈던 캠프의 추억은 투박하지만 정겹다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동네 아저씨는 왜 뺨을 때렸을까요?
시인이 일선의 청소년 친구들을 만날 적이면 환기를 위해 물어보고는 했는데 대답들이 정말 기상천외하다.
"미숫가루는 우유에 타야 맛있는데 그냥 물에 타서요!"

"집에서 미숫가루 타 먹고 물 마시러 나왔는데, 또 미숫가루여서요!"

"얼음을 안 넣어서요!"
미숫가루를 우물에 넣었던 어린 시절의 시인이나, 지금 시인이 만나는 아이들이나 모두 엉뚱하고 귀엽다.

시인의 어머니는 정읍 골짝에서 태어나 정읍 골짝으로 시집간 김정자이고, 장모님은 봉화 골짝에서 태어나 봉화 골짝으로 시집간 김정자이다. 정읍 김정자와 봉화 김정자, 마침 두 분의 성함이 같다. 두 분이 만났을 때 혼자 자지 않아도 되는 김정자가 혼자 자는 김정자를 위해 시인의 장인님을 혼자 자게 하고는 혼자 자는 김정자 방으로 슬며시 건너간다. ‘근당게요’와 ‘그려이껴’를 주고받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나란히, 곤한 잠에 빠지는 정읍 시골집 밤 풍경은 귀하고 아름답다.

이 책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정겹게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 사는 ‘맛’을 만들어 내고 삶에 기쁨과 감사를 더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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