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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May 25. 2021

핫바와 돼지바

마중

"인수분해 진짜 지옥"
수학 학원에 간 아이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고생 많다고 토닥토닥.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다. 아이는 학원 앞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중 나온 나를 찾고 있는 것이리라. 손을 흔들며 아이를 불렀다.
"엄마!"
하고 부르며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뛰어오는 아이의 모습은 이미 과거형. 이제 아이는 웬만해선 뛰지 않는다. 마스크로 반쯤 가려진 얼굴에 미소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속으론 반갑겠지?

이번 달부터 아이가 수학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저녁 8시 학원 수업이 끝날 때면 내가 마중을 나가서 같이 집으로 돌아온다. 처음엔 길눈이 심각하게 어두운 아들이 혼자 집에 잘 찾아오지 못할까 봐 마중을 갔는데 지금은 내가 그 시간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아이는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는 그 말들을 소중히 듣는다.

작년과 올해 사이에 아이는 많이 변했다. 사춘기가 되면서 목소리만 변한 것이 아니라 표정과 행동도 변했다. 사진을 찍으면 활짝 웃는 얼굴로 브이를 그리던 아들은 이제 카메라를 피한다. 안방에서 꼭 부부 사이에 끼어 자려고 하거나 자기 방에서 나가지 말고 같이 자거나 잠들 때까지 있어달라고 하던 아들은 이제 우리 보고 방에서 좀 나가달라고 한다. 같이 밖에 나가던 것을 좋아하던 아이가, 마지못해 따라나서던 아이가 되더니, 이젠 자긴 집에 있을 테니 나갔다 오라고 한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만의 우주가 생기고 그 우주가 팽창하면서 다른 우주와의 거리도 멀어지는 것.

 그만큼  지금 아이와의 순간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유난히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졌다. 집에서 혼자 공부할 때는 자기 마음대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마음 내킬 때는 한껏 달리다가도 힘들면 슬렁슬렁 걷거나 그마저도 귀찮으면 아예 멈추고 한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남이 이끄는 속도에 따라가야 한다. 학원 수업에 익숙지 않은 아이로서는 힘들 만도 하다. 어깨가 축 처졌다.
"편의점 들렀다 갈까?"
"CU요?"
아이 얼굴이 달라졌다. 아이는 왜 이렇게 편의점을 좋아할까? 여행 중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라고 했을 때에도 아이의 선택은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이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핫바를 골라 능숙하게 포장지를 벗겨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나는 아이스크림 코너에서 잠시 망설였다. 눈은 하겐다즈를 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이스크림 하나 가격 치고는 비싸다. 내 고민을 듣더니 아이가
"그럼 돼지바는 어때요?"
한다.  좋다, 돼지바. 이름도 정겹고 가격도 편안하다(아들아, 나중에 여자 친구가 이런 고민하고 있을 때 돼지바 먹으라고 하지 마라. 엄만 괜찮다만...).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되도록 사람이 없는 쪽으로 골라 걷는 우리의 한 손에 각각 따뜻한 핫바 하나, 시원한 돼지바 하나 들려 있었다. 우리는 가끔씩 마스크를 내려서 각자의 '바'를 한 입씩 베어 먹었다. 길 가면서 뭐 먹는 게 얼마 만이냐. 시원한 밤길을 아이와 함께 걸으며 오랜만에 먹는 돼지바, 맛있었다. 각자 먹기 바빠 별다른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그냥 둘이 같이 걸으며 핫바, 돼지바 먹는 자체만으로도.

아이는 계속 자랄 것이고 그만큼 부모에게 의지하거나 함께 하려는 모습은 줄어들 것이다.
'제발 좀 빨리 커라.'
만큼이나
'예전엔 안 그랬는데.......'
라는 생각은 부질없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되, 아이가 크는 모습을 곁에서 잘 지켜보고 싶다. 아이의 일을 내가 대신할 수는 없지만, 마중을 나갈 수는 있다. 이런 나날들이 쌓이다 보면 나중엔 핫바와 돼지바를 먹던 오늘을 그리워할 날도 오겠지만... 일단 오늘은 맛있게 먹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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