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왈가왈부
[책 리뷰] 행복의 기원 vs 행복의 품격
‘행복의 기원’의 저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행복의 과학’이라는 저자의 강의는 “이 수업을 들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강 대기자가 700명을 넘는다고 한다(출간된지 몇 년이 지나서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걸까? 책의 표지에도 이미 나와 있는 것처럼, 저자는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의 특성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는 사람을 찾고, 그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인간은 100% 동물이다.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저자는 행복에 관해 ‘how’가 아니라 ‘why’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간이 100% 동물이라는 점에 비추어 행복도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도구이며, 이러한 행복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건조하고 명확한 주장.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행복해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나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말인가? 나는 본래도 성격이 내향적인 데다 사람들이(특히 이성이) 나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하물며 하필 이 책을 읽었던 시기는 내가 사람들과 거의 만나지 않고 주로 집에 머물며 책을 읽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사람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절대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빠져 있던 중에 이 책의 내용은 나를 행복하기 어려운 부류로 만드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저명한 뇌과학자의 결론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종종 인간관계에 실패를 겪는 내 뇌는 설계에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전반적으로 저자의 주장은 이런저런 연구 결과와 권위 있는 논문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하니 ‘그럼 그런가’ 하며 저자의 말을 그냥 믿어야 할 것 같지만 마음속에서는 심한 저항이 일었다.
그러다가 고영건, 김진영의 ‘행복의 품격’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인간도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행복의 문제를 조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주장에 따르면, 행복은 거창한 삶의 목적이 아니라 단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들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해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영건, 김진영, '행복의 품격'
하! 바로 이거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행복해지는 방법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행복한 삶이 노력으로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유전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노력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8년 세계행복보고서를 통해 행복은 개인이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가에 따라 분명하게 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영건, 김진영, '행복의 품격'
물론, 상반된 두 입장 중, 학계에서 많은 조사, 연구를 통해 더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입장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일반인인 나 같은 사람은 무엇이 사실이든 반드시 그것을 가지고 내 인생을 재단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내 성격 때문에 내가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믿고 싶지도 않다. 내 삶의 주도권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해서 살고, 어떤 행복을 추구할지도 전적으로 나한테 달려 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혼자 있을 때 가슴 벅차게 행복할 때가 많다. 서은국의 책에서는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하기 어려운 길인 것 같지만, 다행히 정여울의 책에서는 이것이 꼭 필요한 일임을 말해준다.
심리학자 앤서니 스토의 ‘고독의 위로’는 ‘혼자 있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필수적인 능력임을 강조한다. 고독은 상처를 치유하고, 상실을 극복하고, 개개인을 창조적인 삶으로 이끄는 힘을 지녔다. 카프카, 베토벤, 바흐, 고야, 칸트, 비트겐슈타인, 뉴턴 등 역사를 이끌어간 인물들에게 ‘고독’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토록 창조적인 작업을 해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여울,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겨울에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을 읽고 나서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고, 약속을 잡고 며칠 후에 차례로 만났다. 물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편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뭔가 부자연스럽고 아쉬운 점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피곤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시기에 내가 정말 원하고 필요로 했던 것은 ‘고독의 위로’ 였던 것 같다. 한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긴장하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만큼, 겨울은 혼자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받았던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휴식을 취하며 나 자신을 조용히 가다듬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나무의 나이테가 겨울에 생긴 것일수록 더 촘촘하고 단단한 것처럼 다소 외롭고 조용히 지내는 겨울은 내가 그동안 소홀히 한 나 자신을 성찰하며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이자 나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는 나는 사람들이 꽉 들어찬 파티 속에서 흥겹게 노는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서은국에 따르면,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계속 ‘착각’ 속에서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좇으며 살고 싶다.
서은국의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또 하나 있다.
“일정 경제 수준에 이르면 얼마나 돈이 있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해진다.(Dunn & Norton, 2013)
최근 주목받는 콜로라도 대학의 리프 반 보벤Leaf van Boven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Van Boven & Gilovich, 2003).
행복과 관련해 경험보다 물질 구매가 불리한 점은 무엇일까? 경험(여행)에 비해 물질(신상 백)에서 얻는 즐거움은 더 빨리 적응되어 사라지고, 타인과의 상대적 비교를 더 자주하게 된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사실 이 부분도 전적으로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불행하다고 해서 물질 구매가 많고, 행복하다고 해서 경험을 위한 지출이 많다기보다는 그저 사람들마다 자신이 좀 더 가치를 두는 분야가 다른 것이 아닐까?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 속에서 새로운 물건이나 옷을 사면서 재미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지 못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비록 내가 물질 구매보다 경험을 위한 지출에 전적으로 더 가치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말하기는 불편하다.
대체로 ‘Why’에 초점을 두는 ‘행복의 기원’과 ‘how’에 초점을 두는 ‘행복의 품격’은 '행복'에 접근하는 관점이 다른 만큼 입장 차가 있다. 그런데 이 두 책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요소로 꼽는 것이 바로 ‘관계’이다. 심지어 고독이 필요하다고 하는 정여울의 책에서조차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 중 하나가 소외감이 아닐까’ 하며 관계의 중요성은 강조된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어떤 이들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어내고, 어떤 이들은 그들이 떠날 때마다 행복을 만들어낸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쉽게도 나는 재치와 유머가 넘치기보다는 눈치 없고 아둔할 때가 많고, 아직도 인간관계에 서툰 점이 많다. 그러므로 내가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떠날 때마다 행복을 만들어 내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어서 떠나기만을 기다리도록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