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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Jun 27. 2021

#감각의 빈곤

우리는 어쩌면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에 굶주린 존재인지 모릅니다.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감정의 물성>이라는 작품에는 이성적 판단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정하에게 물성을 통해 얻어지는 감정의 감각을 전달하는 보현이 등장합니다. 이모셔널 솔리드라는 회사에서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감정의 물성’이라는 제품을 출시하자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왔습니다.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의 형태로 다양하며 그냥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제품입니다.


잡지사에 다니는 정하는 이에 대해 바보 같은 소리라고 일축하며 힙스터들을 대상으로 한 대사기극이 시작된다고 의심할 뿐입니다. 감정의 물성은 정식 런칭 한 달만에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 되어 있었지만 정하는 왜 그런 물건들을 굳이 사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행복’, ‘침착함’ 같은 감정이 주로 팔리고 있다면 대중들이 플라시보 효과에 의존하여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이해해 볼 수 있을 텐데, ‘우울’, ‘분노’, ‘공포’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조차 잘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정하에게 ‘증오’를 샀던 후배 유진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언제든 손안에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거죠....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정하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이모셔널 솔리드 대표에게 묻습니다.

“대체 왜 사람들은 ‘우울’을 사는 겁니까? 왜 ‘증오’와 ‘분노’ 같은 감정들이 팔려나가죠? 돈을 주고 그런 걸 사려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애초에, 그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사고 싶어할 것이라고 예상하셨습니까?”

대표는 말합니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정하는 의미가 배제된 감정만을 소비하는 것은 인간을 단순히 물질에 속박된 동물로 전락시키는 일이라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정하는 수십 개의 ‘우울’ 감정의 물성을 사들이며 힘들어하는 여자 친구 보현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정하에게 보현은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합니다. 정하는 보현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무언가 중요한 것,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듯 싸늘함을 느낍니다.



독서토론회 선생님들과 화상으로 만나 감정의 물성을 구입할 수 있다면 어떤 물성을 구입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가선생님은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있으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드라마 속에서 싸우는 것도 재미가 없고, 그 분노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도 분노나 극단적인 감정을 구매해서 감각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다선생님은 사람들은 감정에 집착하고 감정을 매만지면서 그 감정에 빠진다며 자신은 어떤 감정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정은 타인을 통해서 느끼는 것인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채 혼자 지내는 시간이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정든 아이들과의 마지막 만남인 졸업식조차 영상으로 대체된 것이 너무 아쉬웠다며 대면 수업에서 느끼는 감정과 추억이 사라지는 현 상황에서 ‘만남’이 교사의 진정한 의미 같다고 하시더군요.

  

비대면 방식으로 이루어진 수업, 회의, 만남. 그 안에서 지식은 전달되었을지 몰라도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공유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무릎을 맞대고 앉아 슬픈 아이의 말을 들어주며 손 잡아 주기, 머리를 맞대고 모여 앉아 함께 작품을 만들거나 마주 앉아 침을 튀겨가며 토론하기 등등은 지금은 위험천만한 일이 되었습니다. 직접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지그시 손을 잡아주거나 어깨라도 두드려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데울 수 있었던 것인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는 것임을 이제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이나 동영상, 원격 수업을 통해 지식은 쌓이지만 가슴에서 빠져나가버린 듯한 무언가 중요한 것. 혼자 있을 때는 온전히 채울 수 없고 타인과 함께 어울릴 때 그들의 눈빛, 손의 온기, 숨결을 통해 전해지는 그것. 오감을 통해 몸의 세포들을 깨우는 그 감각. 감각의 빈곤이 감정의 자리를 비우고 얼굴의 표정을 지우나 봅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다양한 감정을 함께 느낄 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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