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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Jun 27. 2021

#지란지교를 꿈꾸며

인근 도서관에 갔다가 계단에 걸린 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제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쓰던 책갈피에 쓰여 있던 글입니다. 당시 매우 유명했던 시인데 지금도 이렇게 자리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기억 저편에 있었던 그 글이 촌스러운 과거의 추억 더미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로 버젓이 전시돼 있는 사실이 참 반가웠습니다. 어쩌면 그 액자가 이미 매우 오래전에 제작되어 오랜 세월 동안 그냥 거기에 걸려있던 것일 수도 있지만요. 제가 청소년일 때 좋아했던 이 시를 지금 청소년들이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문득 궁금합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이하 생략>     


지란지교(지초 지, 난초 란, 조사 지, 사귈 교) [ 芝蘭之交 ]

: 지초와 난초의 사귐. 즉 맑고 높은 뜻으로 사귀는 우정.   

  

지초와 난초 모두 향기로운 풀이라서 '지란지교'는 아름다운 우정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여다보면 내가 '난초' 같이 향기로운 친구를 원한다면 나 역시 '지초'처럼 향기로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슬리퍼를 끌고 찾아갈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런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마음 힘든 날 정말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요? 나만 그 친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도 눈 오는 밤에 김치 냄새나는 옷을 입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찾아올 수 있을까요? 찾아와 준다면 따뜻하게 맞이해서 함께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도 있을 텐데요. 이 시를 처음 접한 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저는 여전히 지란지교를 꿈꾸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라는 말을 듣고 크게 공감하며 위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 우린 유통 기한이 다 됐을 뿐이야. 괜히 안타까워하며 미련 가질 필요가 없어.’

얼마나 간편한가요? 아무리 값비싸고 귀한 음식도 유통 기한이 지나면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아까워서 먹었다가는 탈이 날 뿐입니다. 인간관계도 유통 기한이 있다는 말은 그 관계를 위해 쌓은 시간과 노력에 상관없이 과감히 정리하게 해 주는 말입니다.     


문제가 있으면서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지 못해서 결국 더 큰 상처와 불행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통 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기 아까워서 그대로 먹었다가 탈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아주 오래전 함께 했던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처음에는 반갑지만 더 이상 공통 화제가 없어서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고 관계가 어색하고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아끼던 음식도 새로운 메뉴에는 어울리지 않거나 좋아하던 옷도 유행이 지나면 다시 꺼내 입기 어려운 것처럼...     


그런데 한편, 인간관계를 그렇게 쉽게 끝내버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순간들을 한낱 음식물 쓰레기처럼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 있을까? 내가 살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단지 유통 기한이 지난 사람에 불과한 것일까? 내 과거의 삶에 기억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현재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중요한 것일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이별이 어찌 그렇게 쉬운 일일까?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그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것은 쿨하지 못한 행동으로 마치 유통 기한이 지나서 버린 음식물을 그리워하며 안녕을 비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백화점이나 마트의 식료품 진열대에는 매일 새로운 식자재가 들어옵니다. 오늘 새벽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 막 채취한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전에 들어온 식자재들은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밀려나거나 심지어 쓰레기통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없는 게 없을 것 같은 백화점 진열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신김치입니다. 특히 몇 년 푹 삭힌 묵은지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화려한 도시 불빛 아래 살아가면서도 입맛은 쉽게 변할 수 없어서 매일 빵과 샐러드에 와인을 곁들여 먹고 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묵은지로 끓인 김치찌개에 갓 지은 하얀 쌀밥 한 그릇이 더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곤 합니다. 김치찌개는 반드시 신 김치로 끓여야 맛있지요. 방금 만든 겉절이는 물론 안 되거니와 잘 익은 김치로도 역부족입니다. 그야말로 푹 익다 못해 신 맛이 도는 김치로 끓여야 제 맛입니다. 몇 년간 묵혀둔 묵은지로 끓이면... 하.. 정말 끝내줍니다!     


서구나 현대적 관점으로 본다면 신 김치나 묵은지는 진작에 버렸어야 마땅한 음식, 유통 기한이 한참 지난 음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김치로 끓인 김치찌개는 아무리 화려한 양념으로 버무린 겉절이라 할지라도 비할 바가 못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나 종일 찬바람 부는 겨울날에 밖에서 고생하다가 집에 돌아와 먹는다면 한 그릇의 음식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마치 외롭고 힘들 때일수록 오랜 친구가 큰 위로가 되는 것처럼요,     


묵은지 김치찌개는 찌그러진 양은냄비나 투박한 뚝배기에 끓여야 제맛입니다. 화려하고 비싼 냄비에 넣고 끓이면 오히려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합니다. 볼품없어 보이는 묵은지 김치찌개 한 그릇이 내 몸과 마음을 다 채워줍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 만났다가 금방 헤어지는 사람들, 필요에 의해 만나서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웃기도 하지만 자기 속 얘기는 하기 힘들고 서로 그게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찰나의 만남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금방 만들어 먹는 샐러드 같습니다.  반면, 자주 꺼내 먹지는 않아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든든한 묵은지처럼,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만나도 늘 한결같이 편안합니다. 굳이 새로 산 옷을 차려입거나 예쁘게 화장하지 않아도 되고, 만나는 장소의 분위기나 음식 맛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만남에 유통 기한은 없습니다. 오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묵은지처럼 숙성시킬 수 있는 인간관계는 지초와 난초의 사귐처럼 아름답습니다.       

     

친구     

               홍수희     


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애정이 있으되 묶어 놓을 이유가 없네

사랑하되 질투할 이유도 없네     


다만 바라거니

어디에서건 너의 삶에 충실하기를

마음 허전할 때에

벗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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