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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Jun 27. 2021

#산책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휴일 아침 도시의 거리는 고요합니다. 아직 햇살이 지면에 닿기 전, 가게가 문을 열기 전 도시 거리를 걷는 일은 평화롭습니다. 사람 소리, 차 소리 대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침 산책은 저녁 산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저녁 산책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반면 아침 산책은 마음이 설레고 들뜹니다. 이른 아침에 거리를 걷다 보면 세상이 기지개를 켜기 전 내가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아서 덤을 얻은 느낌입니다. 거리를 청소하시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나 벌써 불이 켜진 빵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부지런한 그들과 한 무리가 된 것 같아 반갑습니다.     


모니터를 보던 눈에 초록을 담습니다. 이어폰을 꽂았던 귀에 새소리를 흘립니다.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잠시 마스크를 벗고 신선한 아침 공기를 온전히 들이마십니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합니다. 인적 드문 거리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자유가 벅찹니다.     


울리히 슈나벨은 <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에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존재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앉아 있거나 몇 시간씩 모니터를 쳐다보는 것은 인간 본성에 걸맞지 않은 일입니다. 정신과 신체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간단한 산책도 지속적으로 하면 건강을 증진시키고 기분을 북돋우는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칸트는 매일 오후 3시 30분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고 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40년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오후에 10km 마라톤을 하거나, 1500m 수영을 한다고 합니다.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서 생각하고 일을 하는 것보다 규칙적으로 밖에 나가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건강을 지키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걷는 것은 복잡한 생각이나 오랜 집중으로 과부하가 걸릴 것 같은 머리의 열기를 식히는 일입니다. 온갖 것이 밀물처럼 밀려와 꽉 들어찬 생각의 방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고 버림으로써 여유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산책은 자기를 돌보고 시야를 넓히는 일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을 때 시간은 파편화되기 쉽습니다. 그럴 땐 자기를 돌보거나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갖기 어렵습니다.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릴 뿐이지요. 말의 눈은 크고 양옆에 있어서 파노라마 사진처럼 널찍하게 경치를 볼 수 있는데 이런 눈 구조 때문에 앞을 봐야 하는 시선이 분산될 수 있어서 눈가리개로 양 시야를 가려준다고 합니다. 경주마는 넓은 경기장을 보는 대신 자기 눈앞의 좁은 경주로만 보며 전력 질주합니다.      


저 역시 돈벌이를 하고 일상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느라 시간의 파편 속에서 저도 모르게 경주마처럼 내달리곤 합니다. 그럴 땐 나를 돌보거나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산책을 통해 지금 여기이 땅을 디디고 서 있는 제 자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기분입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아플 때,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마음을 다스리고 보살필 수도 있지만 바깥바람을 쐬며 자연이 준 선물을 음미할 수 있다면 마음의 주름살이 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외출은 눈가리개를 떼고 자신의 삶을 롱 숏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삶의 기술이니까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comedy in long-shot)”

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활동에는 여행, 운동, 수다, 걷기, 먹기, 명상 등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걷고 있을 때는 큰 즐거움과 의미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매일 같아 보이는 주변 풍경도 사실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매일 뭔가 달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풀도 나무도 매일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산책의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며칠 앓고 난 뒤 산책을 나갔더니 두 발로 땅을 느끼며 걷는 기분이 말할 수 없이 황홀했습니다. 오종우가 <예술적 상상력>에서 "아팠다가 회복되면 주위의 모든 것이 산뜻하게 다가온다. 오감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감각들이 되살아 나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라고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걷는다는 것, 내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복된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못 박는 듯한 소리가 나서 인부들이 가까이서 목공 작업하는가 했더니 야무진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고 있었습니다. 탄천 앞 돌에 가만히 앉아 피곤한 눈은 잠시 감고 귀만 열어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결을 느끼며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지친 내 모습을 위로받는 듯했습니다. 걸으면서 강연을 들었는데 마침 이런 말이 나옵니다.

"너무 조지지 말자.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김창옥)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티베트 속담)      


최인철은 <굿 라이프>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소소한 즐거움들을 더 자주 경험하려고 일상을 재구성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검사를 그만두고 농부가 된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하루 중 햇볕을 볼 수 있는 때가 시체 검시하러 나갈 때밖에 없던 검사 일에 회의를 느끼고 하루 종일 햇볕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직장인들 중에는 하루 종일 실내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모니터를 쳐다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구름이 어떤 모양인지, 볼에 와닿는 바람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한 채....  '행복'이라는 것은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도서를 읽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깐의 산책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산책을 하기에 우린 너무 바쁩니다. 당장 뭔가를 해야 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일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다지도 급하고 중요한 것인지, 잠깐 산책할 틈도 없이 열심히 달리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일지 의문이 갑니다. 쏟아지는 햇살과 신선한 공기가 볼에 닿는 느낌을 희생하며 얻는 것은 안구 건조증과 거북목, 심하면 불면증까지입니다.      


산책은 시간이 남을 때 여유 부리는 것쯤으로 여기고 나중으로 미루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지고, 그런 나날이 수없이 반복될 뿐입니다. 쉼 없이 움직이며 '산책'이라고 하면 ‘한가한 소리’라고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산책을 미루다 오랜만에 나가 보면, 걷기는 내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인데 이걸 왜 그렇게 미뤘을까, 나는 일상에서 무엇을 그렇게 붙잡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던 일을 일단 멈추고 산책부터 다녀올 일입니다. 잠깐의 산책도 허락하지 못하는 삶은 그다지 가치와 매력이 없습니다.     


"훌륭한 생각은 산책을 할 때 떠오른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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