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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Jun 27. 2021

#제주도가 고향입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양만춘은 제 필명이지만 성은 양씨가 맞습니다. 제주양씨. 조상 대대로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제주 토박이입니다. 부모님은 전형적인 제주도민답게 젊었을 때는 어부와 해녀도 하셨고, 낑깡밭도 일구셨지만 지금은 감귤 농사만 짓고 계십니다.      


유년시절 기억의 배경은 온통 바다와 감귤밭입니다. 크리스마스에도 감귤을 따느라 놀지 못해 입이 코보다 더 나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름에는 바닷가에 나가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우리 형제들의 등껍질이 꼭 두 번씩 벗겨지곤 했습니다. 벌겋게 익은 등에서 피부가 벗겨지면 너무 따가워서 언니 오빠와 서로의 등을 수박 껍데기로 문지르며 열을 식혀주곤 했습니다.      


어린 제가 커다란 해녀용 수경을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던, 신비로운 바닷속 세상이 떠오릅니다. 바위틈에 숨었다 나오는 작은 물고기, 바위 색깔을 닮은 고동, 하늘거리는 해초, 햇살을 받은 물빛,... 어떤 근심, 걱정 없이 세상과 단절된 듯한 상태로 말을 하거나 들을 필요 없이 그저 물속에서 눈만 뻐끔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때 느낀 평화로움과 경이로움은 뽀글뽀글 물소리와 오색찬란한 풍경의 모습으로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여름에 저녁마다 하얀 소독약을 뿌리는 모기차가 다녔는데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몰려들어 쫓아다녔습니다. 하얀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신기했고, 여러 아이들이 “와!”하고 웃고 떠들며 무리 지어 뛰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한 번은 달리기라면 자신 있었던 제가 오기가 생겨 그 모기 차를 끝까지 쫓아갔다가 어둑해진 길에 혼자 울며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대학 진학으로 육지에 나와서도 방학이 되자마자 집에 내려가면 깜깜한 밤하늘 가득한 별들을 보며 ‘아, 내가 집에 돌아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깊은 안도의 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제는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줌마가 됐지만 지금도 고향집에 가면 저는 다시 스무 살이 됩니다. 엄마가 해 주시는 밥을 먹고, 내 이름으로 불리고, 저는 엄마 아빠를 부릅니다. 어떤 때는 저를 따라온 아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아이는 왜 여기 있지?' 누군가의 딸인 제가 또 누군가의 엄마이기도 한 사실이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고향집을 떠나기 전날 밤은 늘 기분이 이상합니다. 여러 번 반복하는 친정 방문인데도 떠나기 전날 밤엔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서 멀뚱멀뚱 창문에 비치는 달빛을 바라봅니다. 육지와 분리된 섬이기 때문일까요? 고향집을 떠나오는 것은 다른 세계로 넘어오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고향집. 제가 나이를 먹은 만큼 집도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 집에는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이 있고, 오래되고 익숙한 냄새가 있습니다.     


‘뚝딱이’가 아니라서 세상의 시계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순식간에 ‘뚝딱’하고 일을 해 내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능력 있고 멋있어 보입니다. 제게도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지만, 그들과 같아지기가 힘들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세상의 시계에 쫓기느라 늘 어깨와 뒷목에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놓치지 않기 위해 수첩에 메모하고 핸드폰 알림 설정도 해 두지만 깜짝깜짝 놀라며 허겁지겁 해치우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친정에 가면 내 직분 따위는 사라지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한결같이 막내딸, 막내 동생이 됩니다. 단순한 삶 속에 머리도 마음도 비워집니다. 잔뜩 긴장해서 힘이 들어가 있던 몸에서 힘을 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세상을 날아다니던 새가 젖은 날개와 무거운 몸으로 깃들어 쉴 수 있는 작은 나무집, 제게 고향집은 그런 곳입니다. 넓고 화려하진 않지만 제 뿌리에 가 닿는 느낌입니다. 내 성과에 상관없이 그냥 내 존재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 내가 나고 자란 둥지가 아직 온전히 있다는 것은 늘 마음에 큰 위안을 줍니다.     


다시 삶터로 돌아옵니다. 메리 올리버는
 “어른이 되면 자신이 두 개의 반쪽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여가와 일. 그리고 이 둘을 고려하여 세상을 본다. 여가를 즐길 때는 찬란한 빛을 기억하고, 일할 때는 결실을 추구한다.”라고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가졌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달릴 준비를 합니다.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성인이 된 제게 위안을 주는 것처럼 고향 방문으로 눈과 마음에 담았던 풍경이 퍽퍽한 일상도 살아낼 힘을 줍니다.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 메리 올리버
 
 나는 학교에서 나온다 재빨리
 그리고 정원들을 지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걸 잊는 데 여름을 다 보낸다.
 
 2 곱하기 2, 근면 등등.
 겸손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등등.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
 
 가을쯤 되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다시 불려간다
 분필 가루 날리는 교실과 책상으로,
 거기 앉아서 추억한다
 
 강물이 조약돌을 굴리던 광경을,
 야생 굴뚝새들이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던 소리를,
 꽃들이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을.




<부록> 제주도가 고향이지만 새우는 못 먹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고향이 제주도인데도 새우 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신기해합니다. 실제로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외식을 가면 갈빗집보다 해물탕집에 더 자주 갔습니다. 새우가 빠진 해물탕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맛있는 새우를 왜 안 먹어?”

하며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것이 맞습니다.


 제주도 비바리가 도시에 나가 살다 보니 체질이 변해버렸는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해물철판볶음밥을 먹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배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몇 번 더 응급실에 갔는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어!’

하는 생각으로 대하구이를 먹었는데 밤새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나서부터는 새우한테서 완전히 정을 뗄 수 있었습니다.      


조카들을 데리고 해수욕장에 간 날, 조카의 새우깡을 집어 먹었다가 그날 밤 온 가족들의 눈앞에

“새우깡에는 새우가 들어있다!”

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다들 놀라서 과자 봉지 뒷면을 보았더니 정말 새우 분말 0.4%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조카는 이모가 새우깡을 먹고 몸이 새우처럼 빨갛게 변했다고 일기를 썼습니다.     


 새우뿐만 아니라 그의 친척들, 랍스터와 게도 멀리합니다. 이 얘기를 하면 다들 측은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지만 막상 이런 음식들이 연속으로 나왔던 회식장소에서 저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동료들은 제 거까지 먹을 수 있어서 신나는 표정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야근을 하면서 중국음식을 시켰는데 짜장면에도 새우가 들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군만두만 간장에 찍어 먹은 적도 있습니다. 급식 시간에

“선생님, 오늘 부침개에 새우 들어있으니까 먹지 마세요.”

라고 미리 말해주는 동료를 만나거나, 같이 음식점에 갔을 때 새우가 없는 요리를 주문해주는 친구를 보면 사랑이 싹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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