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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Jul 27. 2021

굳이 알 필요 없는 것들은 모르는 삶

아이랑 같이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그새를 못 참고 스마트폰으로 여러 기사를 보았다.

“어휴~”

“무슨 일이에요?”

“어른 두 명이 중학생 남자아이를 죽였대.”

“어휴~”

“또 무슨 일이에요?”

“산악인 한 분이 조난당해서 돌아가셨대.”

“기자들 진짜, 좋은 얘기 좀 쓰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아이는 올림픽과 관련된 이야기를 내게 하고 있었는데 나는 전혀 귀담아듣지 못했다. 곧 들통이 났다.

“그거 아까 제가 말씀드렸는데?”

“그것도 제가 얘기했는데…….”

아이는 경기 결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선수나 경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나누었지만 나는 같은 공간 안에서 다른 소식에 눈을 돌린 채 한숨이나 푹푹 쉬고 있었던 것이다. 공유와 공감의 실패. ‘지금, 여기’에 충실하지 못한 내 자세 때문이었다.


습관적으로 자꾸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다. 온갖 기사를 다 읽는다. 정치인의 말과 그에 대한 반응, 각종 사고와 범죄, … 하다 하다 평소 관심도 없는 인물의 차종과 집 내부구조까지 구경한다. 안구건조증이 있어서 스마트폰을 보다 보면 꼭 눈이 아파서 고생하면서도 쉽게 멈추지 않는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더 읽을 것이 없는지 마구 찾는다. 이성적 행동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에 가깝다. 바쁘고 열심인 것 같지만 실은 시간을 허비하는 게으름이다. 한번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버리는데 이런 행동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매일 습관적으로 반복한다.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고 여러 기사를 읽어도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고 기분도 좋아지지 않는다. 눈은 피곤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어렵다. 휴식이 필요해진다.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최인철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행복감을 떨어트린다고 경고한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 마음에 들어오면서 정신적 고통과 관계의 갈등을 경험해야 하고 정작 더 중요한 것들을 위해 비워놓아야 할 마음의 여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은 마음의 힘을 비축하는 행위다.


“마음은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대상이다. 자연 만큼이나 지켜내야 할 대상이다.” - <아주 보통의 행복>, 최인철


그의 말처럼 알 권리와 알 가치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무식함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이 새롭다. ‘제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 소문에 느리고 스캔들에 더딘 삶을 살아보자. 끊임없이 세상에 접속하느라 분주한 삶은 단지 ‘바쁨을 위한 바쁨’일 뿐.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 내 마음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세상에 저항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가치 있고 아름답게 가꿔나가야겠다.

© Kanenori,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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