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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Jul 30. 2021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우릴 너무 애쓰게 만든다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가 없었다.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지난 7월 14일 자정부터 백신 사전 예약을 하는데 학기말이라 여러 일로 피곤해서 그런지 자정까지 깨어있기가 고역이었다. 혹시 놓치고 깜빡 잠이라도 들까 봐 알람까지 맞춰놓고 기다렸다. 하지만 막상 12시가 되자 사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접속한 까닭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넋 놓고 기다리다 결국 너무 지쳐서 나는 포기하고 자버렸다. 새벽 1시 30분에 남편이 예약했다고 알려줬다. 그때까지 나 때문에 잠도 안 자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남편도 대단하다. 그런데 처음엔 동네 소아과로 예약했다가 혹시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 초기 대처가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병원으로 변경했다.


출근해서 주위 선생님들 예약한 얘기를 들어보니 아침 6시~8시에 예약이 아주 수월하게 됐다고 했다. 굳이 12시까지 기다릴 필요도, 열리지 않는 사이트 때문에 1시 반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럴 줄 알았나. 혹시 예약자가 너무 많이 몰려 내가 제때에 예약을 하지 못할까 봐 예약 시작 시간에 맞춰 그리도 애를 썼던 거다.


그리고 오늘, 굳이 큰 병원에 예약한 불편함을 톡톡히 겪었다. 초기에 예약했던 동네 소아과는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거기서 금방 접종하고 돌아오면 오늘 하루가 편안했으련만……. 굳이 큰 병원으로 예약 변경한 결과,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접종하는 과정 자체가 무리였다.


차로 15분 걸려서 찾아간 병원에는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지, 근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옆자리에 띄어 앉기가 불가능할 만큼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게다가 종합건강검진까지 하고 다른 진료도 하는 병원이다 보니 가운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외래 환자들까지 뒤엉켜서 엘리베이터나 복도도 혼잡했다. 사람들의 열기 때문에 에어컨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서 대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모자나 손부채로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예약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지만 예약 시간보다 훨씬 늦게 접종을 할 수 있었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왜 그리도 지루하고 힘들던지……. 더위와 좁은 자리, 오가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고, 흔한 텔레비전도 없으니 정신을 팔 데도 없었다. 나는 혼자 시간 때우거나 기다리는 건 잘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오늘 내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을 보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접종을 마치고 15분(실제로는 15~30분) 간 관찰석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지만 15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어났다. 주차 등록을 하고 뒤를 도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있었다. 두 세 발자국 거리였기에 후다닥 가서 버튼을 눌렀지만 열리지 않고 내려가버리는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미워졌다. 엘리베이터는 또 왜 그리 빨리 안 오는지….


한참 기다려서 지하 4층까지 내려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내 차가 안 보였다. 더운 공기로 숨이 턱턱 막혔다.

‘아… 이런!’

내가 차를 주차해 놓은 동은 옆 동이었다. 순간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려서 옆 동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친 걸까? 뭔가 불안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을까?

“어! 잠시만요! 어떻게 오셨죠?”

경호 겸 안내하시는 분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나만 잡았다. 경계의 눈빛이었다. 당황하면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나는 더 부자연스럽게 내 팔뚝을 가리키며, 아, 접종을 했는데요, 지하 4층에 갔는데요, 차가 옆 동에 있어서요,… 같은 말들을 앞뒤 분간 없이 참 어수룩하게도 쏟아냈다. 내가 국어 교사라는 것을 누가 알아보면 난처할 만큼 바보같이 말했다. 그래 놓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한테 차분하게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대답하고 발표해보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싶을 만큼. (‘이런 바보가 무슨 일을 낼 순 없겠군!’ 하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는 나를 풀어 주었고 나는 좀머 씨처럼 부지런히 걸어서 이동했다.


<좀머씨 이야기>에서 좀머 씨는 폐소공포증 환자로, 잠시도 실내에 갇혀 있지 못하는 인물이다. 뭔가에 쫓기듯 항상 마을의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고, 불안에 잠시도 쉬지 못한다.


‘지옥 탈출이다.’

차를 타고 나오면서 내가 들었던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잠시,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와, 제발 집에 좀 가자. 내비게이션과의 불화로 골목을 빙빙 돌다가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던 일이었다. 예약을 위해 자정까지 기다리고, 남편이 나를 대신해서 새벽에 예약을 하고, 동네 병원 대신 큰 병원에 예약을 했던 것은 모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그런 불안함이 불필요한 수고를 낳았다. 지나고 보면

‘아, 굳이 왜 그랬을까? 안 그랬어도 됐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백신 접종은 가까운 동네 병원에서!”

지금은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내가 잘 알아보지도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처음부터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 예약할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기고, 병원도 집 가까운 곳에 예약을 했다.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대응하는 자세에는 차이가 있다.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괜찮을 거라고 조금 더 믿어도 되지 않을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우리를 너무 애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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