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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Oct 26. 2021

사람의 쓸모

우리는 세상에 자신의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해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게 아닐까?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필요 없는 사람이 됐다고 느끼는 것만큼 공포가 있을까? 그러니 욕 중에서도 가장 심한 욕은 '쓸모없는 녀석(사람)'일 것 같다. 반대로 소위,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으로 사회에서 쉽게 나를 내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감정일 것이다. 아무리 개인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는 무리 속에 안정적으로 들어가 있길 원하고,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가 남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을 때 기뻐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안심'이 아닐까? 물론 실제로 베풀진 않더라도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고만 있어도 안심하는 것 같다. 반면, 내가 상대방이나 사회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고 느낄 때 불안하고 좌절감을 느낀다. 그리고... 외로워진다.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친구나 가족 관계에서도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애써왔던 것 같다. 몸이 힘들어도

"정말 대단해!"

한 마디면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내 능력과 존재가 인정받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족관계에서도 내가 뭔가 해줄 수 없을 때는 불편하고 눈치가 보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런 것인가 싶었더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릴 때 우리는 왜 부모님이 보고 계시는 운동회날 더 힘껏, 죽을힘을 다해 달렸을까?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 오거나 반장이라도 되면 부모님께 그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어 했던 것은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얼굴을 보며 안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도 키울 만한 자식이라는 것을 증명해 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의 쓸모는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기쁨과 위안도 포함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좋아하고, 도움이 클수록 그 사람의 가치가 커지는 것 같다. 이것은 어쩌면 생존과 관련된 것이니 비난할 수가 없다. 다만, 우리 참 애쓰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 애처롭다. 언젠가 나도 주고 싶어도 더 이상 줄 게 없을 때가 올 것이다. 쓸모없어지는 때. 그 마음, 미리 당겨서 이번에 잠깐 느껴봤다. '잘' 살아야겠다. 너무 '열심히'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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