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하지현의 책 제목,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라는 말이 반갑게 다가온다. 저자는 부모가 내어주는 빈틈이 커질수록 아이는 잘될 것이기 때문에 너무 잘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고 한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모의 불안'이 문제이며, 부모가 억지로라도 '빈틈'을 가질수록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될 뿐 아니라 성공할 확률도 커진다고 한다. 나는 억지로 빈틈을 가질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 빈틈이 많은 사람이니 위안이 된다.
부모가 성실하거나 자수성가한 타입일수록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아이가 잘될 거라고 믿고, 아이도 자신처럼 열심히 해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많은 부모가 아이의 성공을 위해 '뭘 더 해줘야 할까'를 고민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는 성공한 부모와 자녀가 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학교 현장에서 보아 왔다. 부모는 자녀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게 왜 안 되는지, 아이가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을 본인이 노력도 충분히 하지 않고 그 성적을 받는 것이 답답하다. 부모가 보기에 아이에게 필요한 지원과 조치는 다 해 주고 있는데도...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 부담스럽고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님처럼 될 수 없을 거라며 좌절한다. (자녀의 학업성취 기준이 왜 성공한 부모의 수준이 되어야 하는지... ) 게다가 부모님 말씀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는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어서 더 답답하고 화가 난다. 똑똑한 부모와의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취하는 행동이 기껏 자기 방문을 쾅 닫거나, "됐어", "몰라", "내버려 둬"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의 질문에 "얘는, 이것도 몰라?"라고 말하며 즉각 답을 설명해 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나는 "글쎄.. 뭘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라고 하며 함께 답을 찾아보거나 아이가 답을 찾아본 후 알려달라고 하는 부모가 아이의 자존감을 더 살려줄 것 같다. 부모도 몰랐던 것을 아이가 알려줄 때 아이의 눈은 반짝인다. "대단하네!", "알려줘서 고마워!"라고 부모가 말한다면, 아이는 미소를 띠고 또 다른 알려줄 거리를 찾으러 간다.
부모의 부족함이 아이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에게 위안을 주고 아이의 자존감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수학이 어렵다고 투덜대다가 멍한 내 눈빛을 보고 멈출 때가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수학 과목에서 '양'(요즘으로 치면 'D'등급)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엄마가 수학을 못했고, 지금 자기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을 보면서 감탄한다는 것을 아이가 알기 때문이다.
"네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 정도도 엄마 눈엔 대단해 보여!"
수학 못했던 내가 하는 이 말이, 수학 잘했던 어떤 엄마가
"어떻게 그것도 모르니?"
라고 핀잔을 주는 것보다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줄 것이라 믿고 있다.(물론 아이의 생각은 다를지도... ^^;)
아이가 부모의 가르침대로만 살면 기껏해야 부모 같은 사람이 될 뿐이다. '기껏해야'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그게 최대치이며, 아이의 더 큰 성장 가능성을 막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만큼만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완벽한 부모가 몇이나 될까? 아이는 부모를 뛰어넘는 성장을 하기를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아이가 부모보다 더 큰 사람이 돼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을까?
"우리나라 엄마들은 다 공장에 다녀야 돼."
예전에 지인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공장 노동자를 비하하는 뜻이 아니다. 엄마가 어떤 일을 하든, 저녁에 집에 왔을 땐 너무 피곤해서 간신히 저녁만 차려주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엄마가 아이에겐 최고의 엄마일 수 있겠다는 뜻이었다. 학교에서 이미 진을 빼고 온 아이가 낮 동안 휴식을 취해 에너지 넘치는 엄마의 속사포 질문과 잔소리를 감당하기엔 버겁기 때문이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아이 입장에선 숨통이 막히는 느낌일 것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넓혀 주는 것, 아이들 표현을 빌자면 '좀 냅두는 것'이 아닐까?
부모가 자신의 빈틈을 자식 앞에서도 솔직히 인정하고, 아이를 자신과 동등하게 대하고 자신보다 훌륭한 점을 칭찬하는 것이 아이의 성장을 돕는 길인 듯하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부모의 자녀가 비뚤어지는 사례를 많이 접한다. 부모님이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집에서 보이는 모습 사이의 괴리감, 늘 지당하신 말씀으로 자신을 가르치는 모습(정작 당신은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에서 오는 반발심이 원인이 되는 듯하다. 혹은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자신의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아이에게 집중한 채 일거수일투족 아이를 간섭하는 부모 밑에서 괴로워하다가 비뚤어지거나 아예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을 봤다. 이런 경우 부모는 일부러라도 빈틈을 만들어야 한다.
부모의 빈틈이 아이를 더 능동적이고 독립적으로 키운다. 평소 살림 잘하고 깔끔한 어떤 엄마가 밥 먹으면서 자꾸 흘리는 것을 보고 딸이 엄마 턱에 구멍 뚫렸냐며 휴지로 식탁을 닦아서 같이 웃었다고 한다. 한 엄마가 운전 중에 지리를 몰라서 헤맸더니 아들이 지도 앱을 켜서 길 안내를 척척 했다고 한다. 엄마가 능숙했다면 아들은 의자를 젖히고 잠이나 잤을지 모른다. 엄마가 잘 챙겨주지 않는 아이들이 엄마 믿었다가는 자기가 곤란해지겠다는 위기의식 때문인지 스스로 교과서나 준비물도 잘 챙기더라는 말은 흔하다. 비 와도 부모님이 우산 갖다 주지 않을 것을 아는 아이들은 스스로 날씨 잘 살피고 우산 챙겨 간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결핍의 시대를 살았다면 지금 아이들은 과잉의 시대를 사는 것 같다(물론 여전히 결핍된 환경 속에 사는 아이들도 많다ㅠ.ㅠ). 부족한 것 없이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기본으로 깔고, 거기에 더해 부모가 자신의 노력 정도에 따라 아이의 성공이 달렸다고 생각하고 너무 최선을 다하려는 것 같다. 그러니 시험 성적표를 받고 아이보다 부모가 더 크게 우는 상황이 발생한다.
핼 에드워드 렁켈('스크럼프리' 교육법 창시자. 자녀교육 전문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부모는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부모"
아이의 인생에 집착하기보다 부모 나름대로 재미있게 자신의 인생을 사는 모습이 아이가 바라는 부모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하지현 작가도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더 해줄 것'이 아닌, '덜 해줄 것', '덜 간섭할 것'을 늘려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순간에도 아이의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내가 내어주는 빈틈만큼 더욱더.
+아이가 내 글을 읽고 말했다.
"전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네요!"
좋은 말이지?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