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는 '왜'가 없다; 그것은 피어야 하기 때문에 피는 것일 뿐이다."
- 안겔루스 질레지우스Angelus Silesius
자연은 때가 되면 제 할 일을 한다. 꽃을 피워야 할 시기가 오면 꽃을 피우고, 질 때가 되면 알아서 진다. '왜?'라고 묻지 않는다. 순리에 따를 뿐이다.
우리는 장미가 아니다. 세상에 고개만 내밀어도 아름답다는 칭송을 받지도 않거니와,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처음에는 "뭐?"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손가락으로 이것저것을 가리키며 이름을 익히는 과정이다. "이거?"/ "이거 뭐?"/ "이거 뭐야?"라는 식이다. 그다음에는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유치원에 다닐 시기에도 '왜' 질문을 정말 많이 하는데, 답을 해주고 싶다면 빨리, 짧게 답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답을 기다리기 전에 새로운 질문을 하거나 콩콩 뛰며 노래를 부르고 다른 데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등학교 때까지 아이들의 호기심은 왕성하다. 오죽하면 가장 인기 있는 학습만화책 제목이 'Why?'일까? 중학생 사춘기 시기의 '왜요?'는 이전과는 의미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춘기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은 "왜요?", "뭐요?", "(제 방에서) 나가세요."라고 하는데, 이때의 "왜요?"는 호기심과는 거리가 멀다. 대답 길게 하면 위험하다.
성인이 돼서 던지는 '왜?'라는 질문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질문이다. 유아기 때 "왜요?" 질문은 부모님이나 주위 어른들에게서 답을 구하는 과정이었다면, 성인이 된 후 '왜?'라는 질문은 스스로 탐구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세상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의미가 담기고, 학문 연구의 시초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던지는 질문이 자신의 미래가 된다고 한다. 자기만의 '왜?'가 있어야 한다. 질문하지 않는 삶은 노예와 같다. 우리는 장미가 될 수 없다. 대신, '장미 같은 삶'을 위해서는 질문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내 삶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들기 위한 나만의 질문을 만들고, 그 답을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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