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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함께 먹을까?

by 양만춘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기 전에, 누구와 함께 먹을지 고민하라. 혼자 먹는 것은 사자나 늑대에게 주어진 특권이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


혼밥이 유행인 시대다. 밥만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술도 혼자 마시는 사람이 늘면서 ‘혼술’이라는 말도 생겼다. 혼자 사는 1인 가족이 급격히 늘고 있고, 여행도 혼자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이고, 불편한 식사 자리는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다. 밥이라도 편하게 먹고 싶다는 바람은 최소한의, 그러나 강력한 욕구이다.


혼자 먹는 밥은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존중된다. 마찬가지로 혼자 마시는 술, 혼자 살기와 혼자 여행하기는 다른 사람의 눈치 볼 필요가 없어 편안하다는 장점이 있다.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일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람에 치이다 마침내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숨통이 트이며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있는 그 시간과 공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며 충만함을 느낀다.


이런 시대에 ‘나 홀로’ 대신 ‘함께’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다. '혼자'가 주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점차 개인화, 파편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함께 하는 시간도 의미 있고 소중하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고독은 능동적이지만, 외로움은 피동적이다. 고독은 선택할 수 있지만, 외로움은 그러한 상황에 처해서 느끼는 감정이다. 고독은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주고, 휴식과 더불어 새로운 창조활동의 기반이 된다. 외로움은 우울증과 무기력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온다. 그래서 내가 혼자 있는 것이 나의 선택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게다가 문제는 고독이 길어지면 외로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삶이 굳어지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

그 ‘언제’가 언제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한 인사말로 나누는 이 말만 봐도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밥을 같이 먹는 것은 함께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 식당 장소와 메뉴보다 함께 나누는 시간과 대화가 더 중요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머물며 이야기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언제 밥 한번 먹자!”에 대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그 ‘언제’는 이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약속이 되지만, 반대의 경우 ‘언제’는 기약 없는 미래로 남는다. 상대가 일정을 잡으려 들면 적잖이 당황할 만큼….


밥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을 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가 행복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같이 밥 먹고 싶은 사람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최소한 '밥맛 떨어지는 사람'이 되지는 않기를 바라며...ㅠ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음식을 먹을 때 몸의 기운이 채워지는 것은 단지 음식의 영양소 때문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주는 에너지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얼굴, 좋은 말, 다독거림 등이 있다면, 국밥 식당에서 함께 먹는 식사가 값비싼 호텔에서 혼자 먹는 고급 요리에 결코 뒤질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나 혼자 귀하고 값진 음식을 먹을까?' 고민하기보다 '맛있는 음식을 누구와 함께 먹을까?'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다. 이는 우리가 사자나 늑대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와 함께 먹을까?



p.s.코로나 감염 우려로 함께 먹는 식사가 안전하지 않아 불편해진 현 상황이 안타깝다.


© vasovacu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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