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수업을 빼먹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온 중학생들이 있어서 크게 혼낸 적이 있다. 학년부장님까지 나서서 '미친 것 아니냐', '정신 나간 것 아니냐' 하며 호되게 야단을 쳤는데, 정작 그 학생들은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정말 정신이 나간 것 같았지만 그만큼 그 아이들은 미친 듯이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결국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년부장님께서 학부모님까지 호출해서야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는데 사실 나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늘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쳇바퀴 돌듯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아이들은 얼마나 일탈을 꿈꾸게 될까?
자우림의 '일탈'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우와우와우와!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 " 노래 가사처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을 때 훌쩍 여행을 가는 마음은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할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여행 가는 것과 비할 바가 못된다. 여행은 역시 한창 바쁠 때 가야 제맛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 신나는지도 모른다. 대학교 때 강의를 빼먹고 놀면 얼마나 재미있던지.... 주말에 노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학사관리가 엄격한 학교라서 드물게 느껴볼 수 있는 즐거움이었지만 어쩌면 그래서 그 즐거움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중학생과 대학생은 신분에서부터 미성년자와 성인으로 다르고, 수업을 빼먹는다는 것도 결코 같은 선 상에서 용인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고 싶은 갈망은 오히려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생활이 자유로운 대학생보다 훨씬 클 것 같다.
이거 하라고 한다. 저거 하라고 한다. 공부와 숙제의 범위와 양이 정해져 있고, 외워야 할 단어와 공식이 정해져 있다.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잘 따른 데다 타고난 능력까지 받쳐 준다면 어느새 영재고/특목고 준비반, 의대 준비반 학원 교실에 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받아 적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영재고나 특목고는 왜 가려고 하는지, 정말 의사가 될 생각이 있는지 미처 깊이 고민해 볼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그래도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착하다고 칭찬받는다. 이인은 <생각을 세우는 생각들>에서 “착함은 길들여진 존재로서 하란 것을 충실히 하는 ‘노예’라는 표시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고 했다. 경로에 충실한 삶. 세상의 규율에, 다른 사람의 시선에 길들여져서, 목줄이 없어도 집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하고 그저 제자리를 맴도는 개처럼 스스로 구속된 삶을 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수동적인 생활은 생각을 가둔다.
자신이 '신념'이라고 굳게 믿어 왔던 것이 사실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 생각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주입되고 세뇌당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나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내가 하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면 더럭 겁이 난다. 나도 틀릴 수 있는데 아이들이 들으면서 점검을 안 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버리는 것 같아서 '이게 틀린 이론이면 어떡하지?', '내가 잘못 설명하고 있는 건 아닌가?' 혼자 속으로 고민한다. 실제로 아이들이 마구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내용을 내가 나중에 틀렸다면서 다시 바로잡아줘야 할 때는 참 곤혹스럽다.
하고 싶은 일은
나중에... 시험이 끝나면.... 대학에 가면... 취직하면.... 결혼하면... 집 장만하면... 아이가 좀 크면... 기다리라고 한다. 미루라고 한다. 나중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기다리고 미루게 된다. 인생이 기다림과 지연의 연속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드는 생각, "뭘 위해?".
"모두 원해 어딘가 도망칠 곳을 모두 원해 무언가 색다른 것을 모두 원해 모두 원해 나도 원해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 자우림, '일탈' 중
(참고로 저 일탈 소녀 두 명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해서 잘 다니고 있다(이제 마음 놓고 수업을 빼먹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잠깐의 일탈이 인생의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나고 나니 추억거리가 되어 같이 떠올리며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혼이 났는데도 선생이라고 찾아와 줘서 고마웠다. 어쩌면 걱정할 필요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이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