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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Aug 08. 2020

꼽슬머리는 꼽슬머리대로

“사랑스러운 꼽슬머리네요. 앞으로 파마하지 마세요.”
“네?”

머리 자르러 갔다. 평소 다니던 미용실에는 이미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해서 다른 데로 갔다. 처음 가 보는 곳이었다. 내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 보고 관찰하더니 놀랍게도 ‘사랑스러운 꼽슬’이라고 했다. 나한테 그런 말 하는 사람, 부모님 말고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미용실에서라니. 나는 늘 미용실에 가면 기죽기 십상이었다. ‘악성 꼽슬’, ‘다루기 힘든 머리’, ‘지저분해지는 머리’ 등등 처음 가는 미용실이어도 반응이 예상될 정도로 온갖 악평을 듣는 머리였다. 커트만 하러 갔는데도 미용실에서는 머리 이거 너무 지저분해서 안 되겠다며 파마를 권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파마할 때 내 레퍼토리는 “잔머리도 깨끗하게 펴주세요”가 되곤 했다.

엄마가 꼽슬머리이다. 자식 네 명 중 그 유전자를 나만 이어받았다. 엄마는 파마 값 아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고, 아빠는 내 머리를 ‘복 받은 머리’라고 하셨지만 내 속을 모르는 말씀이었다. 내가 어릴 때 제일 싫어했던 노래는 ‘내 동생 꼽슬머리’였다. 아빠도 막내인데 나까지 막내라서 친척들 중에 가장 어린 내가 뽀글뽀글 꼽슬머리를 하고 나타났으니 우리 언니 오빠는 물론 사촌오빠들도 그 노래를 부르며 나를 귀여워(?)했지만 난 그게 듣기 싫었다. 어른들은 ‘꼽슬머리 앉았던 자리엔 풀도 안 난다’고 했다며 꼽슬머리가 성질은 있어도 그만큼 야무진 거라며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소리를 곧잘 하셨다. 어릴 때 내가 고집을 부리거나 싸움에서 이기면 곧장 따라붙는 소리가 “꼽슬머리 값을 한다”였다.

꼽슬머리는 머리를 묶거나 땋아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긴 생머리 친구 두 명과 학교에 같이 걸어 다니곤 했는데 해를 받고 비친 내 그림자는 이글거리는 태양의 모습 같았다. 포니테일로 묶어도 꼽슬거리는 잔머리들이 내 둥근 얼굴을 빙 둘러싸며 태양빛의 모양을 만들어냈다. 반면 생머리 친구들은 그림자도 예뻐 보였다. 당시엔 소공녀 세에라와 이라이자의 머리스타일이 유행이었는데 난 그런 스타일을 할 수 없었을뿐더러 내 머리스타일은 그 어떤 순정만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아이들 그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님’과 닮을 뿐이었다.

부모님은 ‘복 받은 머리’라며 고마워하라고 하셨지만, 난 ‘저주받은 머리’라고 생각하며 부모님을 원망했다. 찰랑찰랑 긴 생머리가 늘 부러웠다. 아빠는 내가 왜 만날 굳이 돈을 주면서까지 머리를 펴는 파마를 하냐며 이해를 못하셨지만 나에겐 이유가 아주 분명했다. 밥은 굶어도 머리는 펴야 했다. 한 지인이 뉴욕에 유학을 가서 식사 대신 1달러짜리 베이글을 사 먹으면서도 파마 값은 아낄 수 없었다고 말했을 때 (그녀도 심한 꼽슬이다)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날은 역시 비 오는 날, 가장 힘든 시기는 장마 기간이었다. 꼽슬 머리는 제습기도 아니면서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다 흡수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아무리 드라이를 열심히 해도 외출과 동시에 부스스 & 꼬불랑 꼬불랑.

늘 콤플렉스처럼 감추기 바빴던 내 꼽슬머리였다. 그런 머리를 사랑스러운 머리라고 말해 주는 미용사를 만나니 처음엔 장삿속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머리를 많이 잘라내서 내 본래 머리 정도만 남은 상태에서 죽죽 펴면서 모양을 잡는 대신  약한 바람으로 말려주기만 했다.
“이게 끝인가요?”
꼬불거리는 머리들이 제멋대로 뻗쳐서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라서, 솔직히 속으로 당황하고 ‘망했다’ 생각하며 물었다. 그분은 내게 머리가 귀엽지 않냐며, 이런 게 나한테 어울리는 거라고, 앞으로도 이렇게 볼륨 잘 살려서 다니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귀여워 보였다. ‘그래, 이게 내 머리 맞지.’ 싶어서 웃음이 쿡 나왔다. ‘뭐 어때? 이게 난데’ 하는 생각까지. 대한민국의 표준 헤어스타일에 억지로 나를 맞추는 대신 그냥 나를 찾은 기분이었다. 미용실을 나오자마자 내 모습을 찍어서 언니들한테 보내고 귀엽지 않냐고 물었다. 답은 없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내 머리를 보고 놀라는 남편에게도 이게 원래 내 머리라고, 귀엽지 않냐고 물었다. 남편 대답이 기억 안 나는 걸 보면 대답을 했더라도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긴 40대 여성이 자기 귀엽다고 우기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꼬불꼬불 귀여운 꼽슬머리. ‘내 동생 꼽슬머리’ 노래도 이젠 기분 좋게 웃으며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주류에 맞게 타인이 좋아하지 않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커버링'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 주류에 속하고 싶어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꼽슬머리가 대다수였다면 내가 그토록 생머리를 갈망했을까? 남과 달라 보이는 것이 싫고 무엇보다 소수에 속하고 싶지 않아서
"어, 너 꼽슬머리였어?"
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내 머리를 감추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꼽슬머리는 지저분한 머리라고 생각하며 머리가 자라면 또 파마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외모의 일부분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감추는 노력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나를 보는 방식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내가 처음 보는 한 미용사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부모님의 말씀은 너무 주관적일 거라는 생각에 믿을 수 없었지만 미용사의 말은 객관적인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새롭게 보게 했다. 꼽슬머리는 나를 나답게 보이게 했고, 나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스타일이었다. 내가 내 꼽슬머리를 예쁘게 보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콤플렉스도 보기 나름 아닐까? 내 고향에는 오른손이 유별나게 큰 의사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나도 그랬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으레 그분의 손을 보고 놀라고 신기해할 만하다. 본인 스스로 내내 콤플렉스였다는 그 큰 손은 섬세한 작업을 하기에도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로 투박하다. 하지만 정형외과 의사로서 뼈를 바르게 맞춰주는 그분의 오른손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인근에서 웬만한 교통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종합병원 대신 그분의 병원으로 가달라고 할 정도다. 그분의 큰 손은 그 분만의 장점이 되었다.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남과 달라 보이지 않기 위해 기성 틀에 애써 나를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은 미운 오리 새끼의 노력만큼 힘겹다. 다 똑같을 필요는 없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내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고, 당당해지는 것.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인 것 같다.


물론 이 아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  © senjut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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