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만춘 Oct 03. 2020

삶을 짊다

지인 한 명이 나에게 친근한 태도로 (그녀의 관점에서) 좋은 정보를 하나 알려주었다. 0000이라는 뷔페집에서 랍스터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더란다. 1인당 12만 원. 돈이 아깝지 않더란다. 가족들과 함께 가길 추천한단다. 우리 가족 셋만 가도 식사비가 30만 원이 고(초등학생 50% 할인이라도 해도) 부모님이라도 모시고 가면 50만 원이 훌쩍 넘는 한 끼 식사비. 그 식사비가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그만큼 비싸고 맛있는 랍스터를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 그림의 떡인 사람들이 있다. 그녀 눈에 내 외모가 그다지 빈곤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인 걸까?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어차피 갈 일이 없겠지만 그녀의 말을 고개 끄덕이며 들었다. 좋은 정보를 지인과 나누고 싶어 하는 그 친절한 마음은 참 고마웠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아무리 비쌀지라도) 마음 편히 먹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인 것 같고, 한편으론 누군가는 그 한 끼 식사비보다 못한 돈이 없어서 삶의 전선에서 허덕이는데 굳이 그렇게 비싼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그 한 끼 식사 비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불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다만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어떻게',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학생들을 만나며 느끼곤 한다.


J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진로 희망 글쓰기 대회에서 그 아이의 글을 읽으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어쩌면 그 아이가 발 디디고 있는 현실 세계의 모습이 너무 버겁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J는 아버지를 만난 지 오래되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인천인가 어디에 따로 살고 계신다고 했다. J는 방 두 개짜리 외할머니 댁에서 어머니, 누나와 함께 네 식구가 같이 지냈다. 어머니는 외삼촌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하시며 월 120만 원을 벌고, 대학교 휴학 중인 누나도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다리를 다쳐 당분간 집에서 쉬고 있었다. 80이 넘은 외할머니는 당뇨를 비롯해 각종 질환으로 몸이 불편하셨다. 어머니와 누나가 방을 함께 쓰고, J는 외할머니와 방을 함께 썼다. 여태 학원은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고, 시에서 태블릿 컴퓨터를, 동에서 인터넷 서비스와 EBS 연간 수강권을 지원해 줘서 학교 공부 외에 유일하게 공부를 보충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줬다. 어려운 환경인데도 J는 매우 착실하고 예의가 바르고 밝아서 담임으로서 마음이 갔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얇은 점퍼를 입고 어깨를 잔뜩 웅크리며 교실에 들어서는 J의 두 손이 핏기 없이 얼어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J야. 오늘 추울 줄 모르고 옷 잘못 입고 왔구나.”

라고 말했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J는 같은 옷을 입고 와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 한창 롱 패딩이 유행일 때라 발목까지 오는 이불 같은 롱 패팅이 교실 곳곳에 발에 걸릴 만큼 널려 있을 때였다. 비록 J의 집안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인터넷이나 할인 매장에서 저렴하고 따뜻한 외투를 구입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J가 옷이 없어서가 아니라 옷을 잘못 챙겨 입고 왔을 거라고 믿고, J가 얇은 옷을 입고 온 삼일째 되던 날 오후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상황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에구.. 집에 핫팩 많이 갖다 놨는데 J가 안 챙겨 갔나 보네요.”

라고 말씀하셨다. (참고로 J의 어머니는 매우 예의가 있으시고 생각이 깊으신 분으로 대화를 하면 할수록 존경하는 마음이 드는 분이셨다.) 


‘옷을 잘못 입고 온 것 아니라 따뜻한 옷이 없었던 거구나.’

나는 언니에게 얘기를 했고, 고맙게도 언니의 지인들이 순식간에 옷을 모아 주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고 고민이 되었는데 다행히 J나 J의 어머님께 내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선생님! J가 아직 자기는 별로 춥지 않아서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닌 거라고 하네요. 선생님께서 주신 옷을 입고 다니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어머니. 걱정 마세요.”

이렇게 J의 어머니와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폭설이 내렸고 J는 내가 준 옷을 입고 왔다. 그리고 그 겨울 내내 J는 그 옷을 입고 다녔다. 허리까지만 오는 회색 노스페이스 점퍼.

‘그때 따뜻한 롱 패딩을 하나 사줬어야 했는데...’

J를 생각하면 지금도 깊은 후회가 밀려온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던 J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다음 해 스승의 날,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J가 복도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잠시 교실 문을 열고 나가 J를 만났다.

“J야, 선생님 조금 있으면 수업 끝나니까 기다리고 있어.”

“괜찮아요. 선생님 뵀으니까 이제 됐어요.”

그렇게 J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잠깐 왔다 갔지만, 호들갑스럽게 교무실을 찾아와서 한참 머물다 가는 여느 제자 이상으로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창 예민한 시기의 남학생의 눈에 나의 눈빛과 행동이 싸구려 동정으로 비추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내가 J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자칫 그 아이에게 도리어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웠다.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하지만 사실, 불평등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도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계층은 확연히 구분된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초등학교, 중학교의 학교 비용은 공립이나 사립이나 비슷하지만(사교육비의 차이는 차치하고), 영국에서는 중학교에서 부유층 아이와 가난한 아이가 함께 만나기란 구조적으로 흔치 않다. 영화 ‘설국열차’에 나오는 것처럼 다른 세상 또는 미래에도 누군가는 좁은 공간에서 복닥이며 벌레로 만든 단백질 바처럼 형편없는 식사로 배를 채우는가 하면, 누군가는 여유로운 공간에서 파티를 즐기거나 스테이크를 썰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평등은 어찌 보면 사회의 자연스러운 산물 같기도 하다. 평등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한때 공산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연결되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에 따라 소득이 달라진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된다.


TV를 통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자갈 마을에서 하루 종일 자갈을 깨며 한 끼 식사를 위해 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자갈 조각이 튀어 한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해도 치료를 받을 엄두를 못 내고, 이틀째 굶은 상태에서 오늘도 한 끼도 못 먹을까 봐 두려워하며 쉬지 않고 돌을 깨는 그 아이들은 단지 그곳에 태어난 죄, 힘들게 살아가는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죄밖에 없지만 그 죄(?)가 여린 어깨를 천둥처럼 내리누르며 고달픈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인간에게 필요하다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은 그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아침 해가 뜨면 일어나서 돌을 깨러 가고, 하루 종일 돌을 깨고 무거운 돌을 이고 나르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잠드는 나날의 연속.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쩌면 생각을 한다는 것 가체가 그들의 생활을 더 힘들게 느끼게 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춰 버린 것은 아닐까?

불평등한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삶을 누리고, 누군가는 삶을 짊어지고 산다.



© pattib, 출처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