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음악에 재능이 없는 게 맞다

근데 이제 너무 늦게 깨달은

by 비영


3학년 무렵에 깨달았다. 나는 음악에 재능이 없다. 동네 학원에 있을 때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있을 때에나 잘하는 학생이었지. 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보니 나는 재능이 없는 게 확실했다. 레슨실에서 내 앞뒤 타임의 사람들을 마주치다 보니 점점 비교하게 됐다. 아무리 봐도 재능이 없었다.


그걸 확신한 가장 큰 순간은, 내게 음감이 아예 없는 걸 알게 되었을 때였다.




작곡 대학 입시에서는 네 가지 시험을 본다. 화성학, 작곡, 피아노, 그리고 청음. 전에 말했듯 화성학은 음악이론, 작곡은 이론의 활용, 피아노 연주. 그리고 청음은 받아쓰기처럼 재생되는 음을 파악해서 오선지에 적으면 되는 시험이었다. 시험에는 1성~4성까지 있다. 쉽게 말하면 음이 동시에 하나만 들리는 것부터, 네 개가 화음으로 들리는 것까지 있었다.

세상엔 듣자마자 무슨 음인지 알아낼 수 있는 '절대음감'이 있다. 또 이 멜로디의 조성(調性, tonality)을 파악하고 음의 간격을 계산에 유추하는 '상대음감'도 있다. 놀랍게도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넘치고 넘쳤다. 하지만 나는 음을 들으면 전혀 파악이 되질 않았다. 그냥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결정적으로 이때 깨달은 것 같다.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서 내가 핸디캡을 갖고 있다고. 이건 이제껏 뭐든 딱히 못하진 않았던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청음시험의 유무가 학교마다 달랐다는 것이다. 그래도 몇 달간 청음 연습을 해봤지만, 가망이 없어서 결국 포기하게 됐다. 그래서 학교의 선택지가 순식간에 확 줄었다. 가뜩이나 많았던 고민이 더더욱 많아졌다. 이게 맞나? 매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됐다.



근데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더는 돌이킬 수 없다. 공부는 남들에 비해 너무 뒤떨어졌고, 입시철은 얼마 남지도 않았다. 이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죄송했다. 없는 살림에 자식 뒷바라지 하겠다고 내내 무리하고 계신 걸 너무 잘 알았다. 난 죄송한 마음에 달마다 레슨비가 얼마나 드는지 매번 계산하기까지 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행동인 걸 알면서도.


몸은 지치고, 작곡 공부는 가끔 너무 재밌었지만 대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죽어도 재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든 현역으로 가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아무 데도 붙지 못하면? ...그러면 진짜 포기할 생각까지도 했었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했나? 그건 잘 모르겠다. 그 당시엔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 이상으로 하진 못할 것 같다.


우리는 과거 나 자신에 대한 노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기억은 흐려지기 마련이고, 내 고통은 무뎌지기 마련이고, 마음은 옅어지기 마련이고. 그날의 나는 죽기 살기로 해왔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 어쩌고 저쩌고 말을 얹기에는 어린 나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그럼 그냥 군더더기 없이, 앞뒤로 괜히 덧붙이는 미사여구 없이.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내 삶의 목적은 오로지 입시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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