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드디어 작곡과 입성
그럼에도 음악을 좋아해서 참 다행이야
최선을 다한 입시의 시계는 알아서 잘 흘러갔다. 더운 여름 바람이 가실 때쯤 수시가 시작됐고, 수시가 끝나니 수능을 봤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전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본격 입시지옥에 입장했다....
집-학교-레슨실의 지루한 여정을 반복했다. 했던 걸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수십 번 반복해도 완벽하지 않은 그 기분이, 참 사람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남들은 다 놀고 있을 사이 나는 제대로 된 방학도 없이 2월 초까지 모든 입시를 치렀다.
다군의 피아노 시험을 봤던 마지막 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대기실에서는 너무 추워서 핫팩을 두 손 가득 꽉 쥐고 있었고, 번호가 호명되어 무대 위로 올라갔고, 연주를 하다가 종이 쳐서 다시 아래로 내려오고... 그 과정이 느리면서 빨랐다. 일 초는 느린데 일 분은 정신없이 빠른 모순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와서 본 하늘이 너무나 맑고 파랬다. 난 그 구름을 오래 기억하며 지냈다. 아직 결과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이제껏 해왔던 노력과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겨울임에도 왠지 따뜻한 것만 같았다.
“일단 집 가서 12시간 잘래. 그리고 손톱 기를 거야.”
같이 시험을 치르고 나온 친구에게 내가 했던 말이었다.
결론적으로 가, 나, 다군 모두 예비를 받아 내 입학은 2월 중순이 되어서야 확정이 났다. 합격 문구를 보았을 때 방에서 뛰쳐나와 부모님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없어질 기미 없이 심장을 누르고 있던 온갖 감정들이 눈 녹듯 씻겨 내렸다. 다시는 입시 안 할 거라고 엉엉 울면서 주저앉아 버둥거렸었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이 도파민이 터져 나온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레슨 선생님은 결과가 아쉽다고, 조금만 더 하면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재수를 권하셨지만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싫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1년만 있으면 더 좋은 곳을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1년의 시간과 노력과 돈을 또 쏟기가 두려웠다.
줄이고 줄였음에도 이렇게나 할 말이 많았던 1년 10개월의 작곡 입시는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이 났다.
나는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작곡 전공생이 되었다.
역시 나는 음악이 좋았다.
‘작곡 입시 공부’와 ‘작곡 공부’는 완전히 달랐다. 체계적으로 음악을 배우는 과정과 수업이 정말 즐거웠다. 물론 그간 우여곡절이 많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내게 재능이 없다는 것도 깨닫긴 했지만, 이렇게 즐거운 걸 보니 학과는 잘 골라 왔구나 싶었다.
참 유난이지만 작곡과는 술을 마실 때에도 음악 얘기를 하더라. 취한 상태로 자기가 좋아하는 작곡가와 음악사조를 토론하길래 처음엔 미친 건가 싶었는데.... 다들 행복해 보여서 나도 마냥 좋았다. 나중엔 어느새 나도 거기에 말을 얹어 격정적인 대화를 하고 있더랬다. (언젠가 브런치에 음악과 관련된 글도 쓰게 되면 좋겠다.)
(학기 중에 작곡한 가곡 일부)
많은 곡을 쓰고 많은 것을 배웠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 좋았다. 음악이 당연한 삶도 좋았고, 내 주변이 전부 음악인 것도 좋았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게 맞았구나, 그런 확신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이제껏 했던 고생과 나의 고민을 전부 보상해 주는 것만 같았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좋았고, 결국 음악을 하고 있는 내가 좋았다.
그렇게 내 작곡과 대학생활은 비교적 순탄히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