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전공은 애증의 존재

아는 만큼 좋은데 싫어

by 비영


글은 사람이 자신에게 갖는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걸까. 조금이라도 우선순위에서 제해두기 시작하면 귀신같이 영감이 떠나간다. 꼭 ‘나중에 내가 간절해지면 다시 돌아올게.’라고 새침하게 말하는 것처럼. 관성처럼 써오다가 딱 하루 핑계를 대며 글 쓰는 것을 미뤘더니 그대로 며칠을 저 멀리 가버렸다. 오늘은 책상 앞에 앉아 집 떠난 글을 다시 데려오는 날이다.




내게 전공은 참 애증의 존재다. 너무 좋은데, 정말 하고 있으면 행복하고 이 길을 선택했다는 데에 괜히 자부심까지 생기는데, 동시에 이걸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4년의 과정을 통해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원래 무식한 게 용감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난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음악을 많이 알아버린 것 같다. 직업으로 삼는 게 겁날 만큼.


창작은 참 괴로운 작업이라는 걸 느꼈다. 매번 시험기간마다 전공실기곡을 쓰기 위해 머리를 뜯고 나면, 단순 암기 교양을 공부할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특히 시간성이 있는 학문 특성상 작업이 더 고되게 느껴진다. 1초를 쓰는데 30분이 걸린다니? 10초를 쓰는데 3시간이 걸린다니?처럼 자꾸만 두 시간 개념을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작 1초 동안 귀를 스쳐갈 곡을 작곡하기 위해 10번의 수정과 100배가 넘는 시간을 들인다니.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만하다. 하지만 그런 1초가 모여 1분이 되고, 그 1초가 곡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그러니 군말 없이 쓸 수밖에 없다. 고통받으며 써 내려간 그 곡을, 나는 결국 사랑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음악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간 사람이 많다. 음악과 관련된 직무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순수작곡은 아닌 경우가 많다. 다들 현실에 부딪히고, 고민하고, 결국 각자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낸다. 내가 본 그들은 전부 음악을 사랑했고,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결심이 있었을지 짐작할 수도 없다.


나는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겠다 결심한 순간 쥐고 있던 노를 놓친 기분이었다. 망망대해 가운데에 멈춰서 표류하는 것 같았다.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되돌아갈 곳도 없었다. 노를 만들어야 하나? 근데 만들 재료가 없는데? 어디로 가지? 얼마나 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매일 물음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장래희망이라는 배를 탄 사람들이 열심히 노를 저으며 멀어지고 있었다. 다들 각자 갈 길이 확실하다는 듯이. 그걸 보며 나도 너무나 노를 젓고 싶었다.


아무튼,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름 낙관적인 가치관으로 살고 있다. 그동안 생각도 많이 했고, 고민도 많이 했다. 내 삶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자. 평생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함께하는 취미가 생긴 것만으로도, 그로 인해 인생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학창 시절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늘 ‘피아노 연주’라고 답했다. 공부하다가 힘들 때 피아노를 치고, 악보를 왕창 뽑아놓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치고 또 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작곡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리고 피아노 레슨을 시작한 순간 내 취미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게 되었다. 한마디로 취미를 뺏겨버렸다.


이제는 내 취미가 피아노 연주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은 종종 시간이 나면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의무감 없이 원하는 만큼 연주하곤 한다.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취미를 돌려받았다고 생각하자. 당장은 고민이 많겠지만 돈 걱정 없이, 남 시선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을 만큼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된 것이다. 난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자기 합리화고 정신승리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 세상엔 이래야만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것들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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