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소중했던 내 [ ]아 이젠 안녕

스스로 여는 인생 N막

by 비영


내가 취준을 포기했을 무렵,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사주셨던 전자피아노는 (때마침) 낡아 더 이상 소리도 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피아노를 내다 버릴 때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다.

이제 내 인생이 송두리째 변할 거라는 예상과 함께 미지를 향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이제 정말 할 줄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해야 하는 것도,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방치되어버린 것이다.

평생 함께 갈 것만 같던, 죽어서도 꿈 꿀 것 같던 음악은 그렇게 내게서 멀어졌다.


처음엔 내가 음악을 그만뒀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고 자존심도 상했다. 속도 쓰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더 이상 음악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내심 기쁘기도 했다.

음악을 관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취미가 생겼다. 지금도 가끔 악보를 잔뜩 뽑아서 연습실을 예약해 혼자 피아노를 뚱땅거리다 나오곤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언제쯤이었을까, 누군가 내게 물었었다. 지금 이 기억을 갖고 다시 돌아간다면 작곡을 전공할 것이냐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곡을 전공한 것을 후회하느냐? 그것 또한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예체능은 참 현실의 벽을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분야다. 일단은 돈이 무척 많이 들고, 아무리 해도 결국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없는 지점이 오고는 한다. 돈을 벌 수 있는 시장도 무척 좁은 편이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스킬을 가질 수 있지만, 그만큼 보편적으로 익히고 배우는 스킬과는 멀어진다. 넓게 보지 못하고 한 우물만 파다가 만약 나처럼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때가 오면 결국 남들과 비교해 아무 능력이 없는 바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음악 입시를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평범하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나 자신에 취했던 철없는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길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대학교에 다니며 음악을 배운 4년의 시간이 내 인생에 가장 눈부시게 빛났던 시간임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학문을 원 없이 배웠고,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곡을 써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물론 죽도록 힘들게 곡을 완성하고 나면 내가 쓴 악보를 쳐다도 보기 싫어질 때가 오지만, 그저 오선지 위에 있던 내 곡이 연주자의 손을 거쳐 들을 수 있는 진짜 ‘음악’이 되는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희열, 뿌듯함, 벅참.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약 10년 정도 되는 음악 인생을 8개의 짧은 글에 다 담기는 어렵다. 못한 이야기도 많고, 생략한 것도 많지만 이 또한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고, 해보고 싶은 도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거의 20년 가까이 내 동반자였던 음악과 드디어 작별했다. 이제 나는 음악하는 나를 꿈꾸지 않는다.

더 이상 내 꿈에는 음악이 없으므로, 전공생의 작곡 포기 일지는 여기서 이렇게 끝이 난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계절은 다시 돌아오듯, 졌던 꽃이 따듯한 봄에 다시 피어나듯. 새로 시작될 나의 다음 여정을 내가 가장 먼저 응원하고 잔뜩 기대해주고 싶다.


늘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건 어렵겠지만 그 또한 내가 걸어온 길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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