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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시일 Aug 24. 2024

소설: 너의 뒤에서 #1

 # 1 THE PROGRAM의 시작


1.그의 결백

2028년 1월, 생방송 뉴스 스튜디오

서울의 겨울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칼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코트 깃을 여미며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긴장된 얼굴은 바로 뉴스 스튜디오에 있는 아나운서의 얼굴이었다.

“속보입니다! 직장 동료의 다리를 둔기로 30차례 내리쳐 불구로 만든 3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되었습니다. 이 남성은 엽기적인 범행을 시인하면서도, 동기는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사건 현장에 나가 있는 박정현 기자 연결합니다.”


화면은 곧바로 경찰서 앞 현장으로 전환되었다. 박정현 기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취재진 사이에서 긴장된 얼굴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네, 박정현 기자입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직장 동료의 다리를 무참히 내리쳐 불구로 만든 피의자 김씨가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경찰서를 나서고 있습니다."

박정현 기자는 눈앞에 보이는 김씨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을 이었다. 주변은 취재진과 경찰관들로 북적였고, 긴박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김씨는 어딘가 초점이 맞지 않은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자들이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그의 얼굴을 포착하려 애썼다.

“피해자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없습니까?” 박기자가 급하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김씨는 잠시 고개를 숙이다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의식은 우리가 경험이 만들어 낸 환각이라는 말… 그가 맞았습니다.”


그의 중얼거림은 사람들 사이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곧이어 김씨는 무심히 경찰차에 올라탔고, 문이 닫히면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울역 대합실

서울역 대합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북적이고 있었다. 겨울 바람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한 노숙자가 낡은 외투를 몸에 두르고 앉아 있었다. 그는 직장동료의 다리를 내리쳤다는 뉴스를 보며 소주를 병채 마시며 혼자 중얼거렸다.

“체! 죽인 것도 아닌데 뭐 뉴스까지 나올 일이야! 이러다 나도 뉴스에 나오겠구만.”


그의 말은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지나가던 젊은 남성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뉴스에서 직장동료의 다리를 내리친 피의자 김씨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의식은 우리의 경험이 만들어 낸 환각… 그리고 환각은 생산될 수 있는 삶의 축복.”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그는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타고 있는 고속열차는 인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서울역은 여전히 북적거렸고, 그 안에서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군중들은 비명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노인이 인파 속에서 몸의 경련을 일으키며 절규하고 있었다.


“으아~~~~ 살… 살려……줘!”


.

그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도움을 청했지만, 그의 낡고 더러운 외투와 씻지 않은 얼굴에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누군가 먼저 나서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노인은 입에 거품을 물고 결국 힘없이 쓰러졌다. 그 순간에도 역사 안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생방송 뉴스 스튜디오

“9시 뉴스입니다.” 아나운서는 무거운 표정으로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침통하고 신중해 보였다.


“오늘 서울역에서 한 노숙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CCTV 확인 결과, 사망한 노인이 쓰레기통에 있던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감식 결과, 소주에는 비둘기 퇴치제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과량 섭취 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약물입니다. 경찰은 왜 이 물질이 쓰레기통에 있었는지 조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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