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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ocktail Blues

000 - 멋대로 살기로

Cocktail Blues

by 유정

안식월 2주 차에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로 유튜브를 보다가 멋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진짜 나쁜 년으로 거듭나겠다는 결심, ‘나’만 생각하겠다는 다짐. 결심으로도 모자라 다짐까지 하고 보니 흘러가는 시간 위에 떠다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기록하다 보면 진정한 나쁜 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100가지 장래희망 중 하나를 이루게 될 것이다.


내 우울은 2n살, 성인이 된 지 오래다. 처음 우울을 자각한 것은 대학교 전공수업의 과제로 정신과를 찾았을 때였다. 그 후로 20여 년 동안 숨기려고 애썼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므로, 최선을 다해 숨겼고 그러는 동안 내 우울은 나를 잠식했고 잠시라도 방심하면 어김없이 전치 4주짜리 상처를 내곤 했다. 그러다 살고 싶지 않지만 죽을 용기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부터 나를 살리기로 했다. 어느 새벽,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걸어 모든 상담원이 상담 중이라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고 하염없이 연결을 기다렸던 날, 드디어 연결된 상담원의 고단한 목소리가 서둘러 상담을 끝내려고 했을 때, 살고 싶지 않지만 죽을 용기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나를 살리기로 한 날로부터 약 2년 동안 곳간에 모아둔 돈을 티끌 하나 안 남기고 다 써버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우울은 틈만 나면 미친년 널 뛰듯 했다. 이명은 진화해서 두 가지 이상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툭하면 공황 발작이 왔고, 이틀 사흘 잠만 자느라 끼니도 걸렀다. 그러다 안식월 2주 차, 사랑하는 JHY에게 따귀를 맞고 -그녀는 아주 차분하게, 심지어 따스한 말로 따귀를 때렸다- 정신을 차렸다. 정신은 차렸어도 다소 어리둥절했던 것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 행복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 그러다 한 영상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내 멋대로 해석하고 찾은 실마리지만 간단하고 명쾌해서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내 멋대로’, 꿈꿔 오던 ‘나쁜 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의사가 했던 말을 곱씹는다. 의사는 그때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의 생은 덤이니 마음대로 멋대로 살라고 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 보려고. 과연 이 결심과 다짐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흐르는 시간을 타고 떠내려 왔다가 떠내려가는 행복이라든가 즐거움 같은 반짝이는 것들을 기록하다 보면 결심은 이어지지 않을까. 두고 보자는 사람 안 무섭다지만 두고 보기로. 나쁜 년이 되고 싶은 거지 무서운 년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니까.



덧. 실마리를 제공했던 유튜브 영상은 다음과 같다.

유성호의 데맨톡: 행복은 정말 마음먹기에 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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