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쫄면순두부와 한라산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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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기분이 정말 좋았다. 모처럼 찾은 공방에서 아이디어가 샘솟는 바람에 두 선생님께 '작업을 참 재미있게 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역시 흙을 만지는 것만큼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도 없다는 것을 또 실감하고, 다정한 선생님들은 늘 그렇듯이 적당한 관심과 무관심으로 나를 보살펴 주셨고, 그 황홀한 온기 속에서 온몸으로 따스함을 느꼈다.

다음날이면 새로 시작한 알바비가 입금될 예정이었고, 그래도 생활비는 여전히 빠듯하지만 외식한 지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좋은 기분을 핑계 삼아 외식을 하기로 했다. 새로 생길 때부터 도장 찍으러 가야겠다고 생각만 하던 가게에 갔다. '두 분이세요?'라는 질문을 두 번이나 들었고, 그때마다 '하나요'라고 답했는데 이 가게에는 혼자 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호기심을 끄는 메뉴를 앞에 두고 고심 끝에 고기쫄면순두부를 주문했다. 지극히 내 관점에서 '순두부=하얗다=안 맵다', '쫄면=쫄깃쫄깃=맛있다', '고기=고기고기=맛있다'라는 기준을 가지고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주문이 들어가자마자 조리를 시작한 -아마도 사장님 겸- 요리사는 매운 연기를 피우며 요리를 시작했고 -'하나'는 바에 앉으라고 해서 요리하는 모습이 다 보였다- 청양고추 채 썰어 담아 놓은 투명 플라스틱 컵이 눈에 띄어 황급히 청양고추나 매운 고추는 넣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사장님은 처음부터 고추랑 볶는다고 답했고, 물어보고 주문할 걸 그랬다고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 안주로 나온 새우깡이 매운맛이었을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무엇보다 순두부는 '기본'이 빨간 국물이라는 걸 기억했어야 했는데. 너그러운 사장님은 어떤 메뉴가 맵고 안 매운지 설명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얇게 썰어 시럽 뿌린 토마토 한 접시를 덤으로 주셨다. 그럼에도 순두부는 맛있었고, 고기는 고기고기하게 맛있었고, 쫄면도 쫄깃해서 어떡허든 먹어보려고 애썼지만... 고기쫄면순두부는 남았고 토마토는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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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매운 것에도 조금 둔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진로골드(25도)와 한라산(21.5도) 사이에서 오버하지 않고(?) 한라산을 선택한 것도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노지로 주세요'라는 객기를 부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아쉬운 것은 요즘 술만 마시면 머리가 조금 아프다는 것이다. 최근 술을 대폭 줄였기 때문인가 싶은데, 정말 그런 것이라면 무엇에도 제깍제깍 반응하지 않는 내 몸이 어쩐 일로 이런 일에 반응하는 것인지 야속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기분은 좋았다. 한 병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했고, 집까지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씩씩하게 걸었고, 그 와중에 애정하는 빵집에서 모처럼 마음대로 빵을 샀다. 회사 일 때문에 골치는 아팠지만 그게 희미해질 만큼 기분이 좋았다고 쓰고 보니 이런 일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낮보다 밤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둑한 것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밤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만 생각하자. 그렇게 계속 꼼지락꼼지락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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