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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ocktail Blues

010 - 칵테일

Cocktail Blues

by 유정

Co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병명은 명확해지는데 병은 더 깊어졌다. 몸이 아프면 의사가 어떤 사람이든 병만 고치면 되고, 또 그럴 수 있는데 마음이 아프면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해진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나아지겠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던 나를 다독다독.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만난 의사가 정말 좋았다. 친절하고 다정했으나 담담하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사람이어서 이 사람이다 싶었다. 무엇보다 상담 중에 처방약을 '칵테일'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좋았다. 마음을 다독다독여 줄 칵테일 한 잔, 너무나 낭만적이잖아. 그래서 이 투병 기록의 제목을 'Cocktail Blues'로 정했는데 오늘로 그 병원의 방문 횟수가 88회를 맞았다. 햇수로는 6년. 아이고, 오래도 됐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어떻게 버텼네. 아니 견뎠지.

의사는 언제나 친절하고 다정하되 단호하게 칵테일 레시피를 바꿔주었다. 내 몸 어딘가에 있을 신경들이 과하지 않으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 마음 붙들어 줄 수 있는 칵테일을 처방해 주었다. 지난달에 갔을 때 마음은 더 이상 가라앉을 곳이 없는데도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는 다소 결연한 표정으로 레시피를 바꾼 칵테일을 처방해 주었다. 그 칵테일이 '내 멋대로 살겠다'는 각성과 맞물리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다. 처음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설렘이 끌어들이는 불안과 초조까지, 잠들기가 무섭게 깨어나 긴긴 하루를 보내느라 녹초가 되었어야 했는데 오히려 각성하게 되는 날들 앞에서 당황스러웠다. 결국 극도로 산만해지는 지경에 이르고, 다시 가라앉을까 봐 걱정하기보다 끝간 데 없이 떠오르기만 할까 봐, 그게 또 다른 병이 될까 봐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의사는 다시 떠오른 마음이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도록 칵테일 레시피를 조절해 주며 조금만 더 일찍 만나자고 했다. 급변하는 마음의 고삐를 잡으려면 그게 좋을 것이다. 그래봐야 1주일 당겨진 일정이지만 중요한 시기니까, 미세조정이 필요한 시기니까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의사와 나는 항상 웃으며 다음을 기약한다. 의사의 천진한 미소가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며 진료실 문을 닫았다. 언제까지 또 이 문을 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어야 닫고, 닫아야 열 수 있으니 기꺼이 열고 닫으며 드나들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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