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ocktail Blues

019 - 아무튼, 믿는다

Cocktail Blues

by 유정

우주에 인간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공간 낭비니까, 외로우니까... 등등의 이유로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고 같은 개념으로 신의 존재도 믿는다. 믿는다고 쓰니 문득 믿음이란 경계에 있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증 가능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사이에 있는 마음. 지인 중에 아직까지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은 없었지만 남묘호랑개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유교 신자는 있었다(유교 따르는 사람들을 신자라고 불러도 될까? 그렇지만 유'교敎'이고, '신信'자이니까 유교 신자라고 해도 되지 싶다). 천주교에서 세례와 영성체를 받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종교에 대해 생각해 왔다. 결론은 "어딘가에 신은 있겠지, 귀신도 없으면 서운할 것 같고"다. 그래서 어딘가에 있을 신에게 안부를 물을 땐 참 고생스럽겠다고 말문을 열고 귀신의 안부를 물을 땐 그저 해원解冤만을 빈다. 그런데 또 문득 살아서도 풀지 못한 걸 죽어서는 풀 수 있으려나 싶어서 더 간절히 해원을 빌게 되고, 신에게는 나 말고도 비는 사람 천지빼까린데 그냥 안부나 전하고 싶었다고 그러려니 하고 좀 받아주고 안아주라며 말문을 닫는다.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보다 더 되바라진 인간 나부랭이가 또 없을 텐데, 그렇잖아, 다들 주는 거 없이 달라고만 하는데 안 힘들겠냐고.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어딘가에 요정 같은 존재들이 있다고도 믿는다. 이를 테면 길을 묻는 추레한 노인이 뾰로롱 변신해서 선물을 준다든가, 내가 문을 잡아줬던 낯선 이가 또 다른 누군가의 문을 잡아주게 되고 또 다른 낯선 이의 생명을 구한다든가 하는 연쇄작용 같은 것들. 그래서 내가 아주 작고 하찮은 착한 일을 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커져서 돌아올 거라 믿게 되는 그런 것들. 그래서 쉽게 외면하게 되고 눈 감고 귀 막게 되는 그런 것들. 아무튼,

믿음부터 믿음을 줄 대상을 선택하는 것과 믿음과 관련된 존재들에 대한 고민을 하느라 또 각성해 버려서 잠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펫시팅을 하러 나왔다가 집에 가면 잠들어버려 일 못할까 봐 카페에서 주접떨고 있게 됐다. 그건 그렇고, 종교 믿는 사람들 공부 좀 했으면, 기왕 하는 공부 제대로 좀 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해석은 자유라지만, 해석의 자유를 얻으려거든 마음부터 좀 곱게 다잡았으면 좋겠다. 그럴 거 아니면 어디 가서 무슨 교 신자라고 으스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18 - 좋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