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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ocktail Blues

022 - 그림자

Cocktail Blues

by 유정

월요일에는 으레 출근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며 출근하거나, 출근을 합리화할 수 있는 모든 이유를 찾으며 출근하기 마련인데 오늘은 어쩐지 그림자를 생각하며 출근했다. 관심받고 싶은데 관심받는 걸 싫어하는 마음은 그림자 속에 있기를 좋아했다. 발 하나 정도 그림자 밖으로 내밀고는, 그림자 안에서 빛을 받고 싶다고 꿍얼거리곤 했다. 그러니까, 자초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는 것은.

일을 할 때도 사랑을 할 때도 온몸과 마음을 다해 나를 죽일 듯이 뛰어들어 놓고, 주목받는 것은 늘 내가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누군가를 살뜰히 보좌하는, 누군가의 무엇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던 건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고 쓰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필요로 했음에도, 내가 나를 쓰면 되는 것이었는데도 그렇게 모자란 사랑을 채우려고 들었다. 사랑도 뭐, 별반 다를 것 없었지. 누군가의 지갑이 되기도 했고, 내 이름보다 누군가의 여자친구로 불리는 일이 잦았고, 누군가들은 나를 주변에 소개하기보다 감춰두곤 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했으므로, 누군가의 주변 사람들도 궁금했으나, 누군가들은 대체로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누군가들은 언제나 일 다음에 나를 두었으나, 나는 늘 일 앞에 누군가들을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응, 돈, 벌어야지, 인정, 받아야지, 그게 그렇게 중요했으면 사랑 같은 거 시작을 말았어야지. 누군가들은 어쩌면 사랑이라든가 연애 같은 걸 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먼저 매달리는 쪽은 나였고, 제발 한 번만 봐 달라고 사랑 한 줌 나눠 달라고 빌어댄 건 나였고, 한 줌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나를 쏟아내는 동안 누군가들에게 나라는 호의는 권리가 되었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라는 도돌이표에 갇혀 버려 어쩌면 누군가들이 내 손에 쥐어 주었을지 모르는 사랑 한 조각을 알아채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거, 뭐, 이제와 무슨 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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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쏟아지는 햇살 아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주 멀리 아주 멀리에서 온 빛이 나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온몸에 다 담기지 않는 빛이 수줍어 늘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꺼풀을 노을빛으로 물들이는 햇살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하루 온종일 볕이 드는 이 집에서, 알람보다 더 알람 같은 햇빛으로 깨어나는 걸 좋아하지. 나는 여전히 관심받고 싶지만 관심받고 싶지 않아 햇살 앞에서 눈을 감을 것이나 그림자 속에 머물지 않을 테다. 철마다 색을 바꾸고 온도를 바꾸는 햇살 아래 설 테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 땅 속에 스몄던 빗물이 햇살을 받아 날아오르는 것처럼 몸 안에 가득 차 있던 물들이 기화하는 게 아닐까. 나는 곧 보송보송해질까, 바싹 말라버릴까. 어떻게 되든 다시 물이 되어 어딘가에 스미겠지. 그렇게 또 한 번, 또 한 바퀴를 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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