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Cocktail Blues

030 - 갈림길

Cocktail Blues

by 유정

틈틈이 다정한 것들을 생각하려고 애쓴다. 모래알 보다 작아도 다정하면 손금으로 쥐고 오늘의 다정함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게 다정함을 키우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의 다정함은 두 팔 벌려 안아야 할 만큼 커 보이는데 내가 수집한 다정함은 주먹을 꽉 쥐어 손금으로나 쥘 수 있을 만큼 작다. 그래도 그렇게 모은 모래알 같은 다정함이 술병 안에서 잘그랑.


내비게이션이 100미터 앞에서 좌회전을 하라고 하는데 100미터도 가늠이 안 되고, 삼거리인지 사거리인지 오거리인지도 가늠이 안 되어 좌회전인지 10시 방향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100미터 앞에 갈림길이 있고 어느 방향으로든 접어들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다니고 있는 직장은 이를테면 사무직인데 부업이라 해도 좋을 잔업이 꽤 많다. 동료 하나는 내가 손도 빠르고 곧잘 한다면서 공장에 취직해도 잘할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보람찬 일을 잘도 하는구나 싶어서. 그래서 보람차게 일할 수 있는 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부디,

스무 살에는 정말 공장에 가고 싶었다. 주변에 공장이 없어서인지, 진짜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지, 글을 써보고 싶었는지 애매하지만 어쨌든 공장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틈틈이 부업은 했다. 다른 사람이 받아 온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리본 접는 일을 받아다 하기도 하고. 부업을 하면서 글 쓰는 일보다 '단가'가 안 맞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밥값 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밥값의 기준이 하향평준화되는 것 같아서 더, 그만 둬야겠다 싶다. 으스대 버릇하면 안 좋아. 이러나저러나 지나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겸손이 넘치는 게 그나마 덜 무해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한 달 뒤에 어떻게 될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신경 쓰인다. 기대일까, 불안일까.


아, 노랫말을 쓴 노래가 세상에 나왔다. 지인들은 제목에서부터 나를 떠올렸다 한다. 100가지 장래희망(?) 중에 '빨간 뚜껑' 회사로부터 '빨간 뚜껑'을 협찬받는 것도 있는데. 친구에게 목놓아 블루스를 외쳤건만 밴드에게 블루스가 웬말이냐며 귀여운 곡을 만들었다. 지난해에 쓴 노랫말인데 벚꽃 시즌에 내자고 기다렸건만 요상한 날씨 때문에 벚꽃 다 진 후에야 세상에 나왔다. 봄의 새순 같은 노래다.


회사에서 뜬구름 같은 글을 멋대로 써제낀지 2개월차. 다음주까지만 하고 접으려고 했는데 고마운 댓글이 하나 달렸다. 진심에 화답하는 진심이라니. 아이, 신기해. 그래도 접을 것이다. 회사에서 써제낀 글인데 지나치게 정성을 들여서 아까워. 회사가 이 정성을 모르니 더 아까워. 내가 가진 거라곤 글 뿐인데 이건 너무 아까워. 단지 그뿐. 그러니 고이 접어, 나빌레라. 그래도 인터뷰를 좋아한다는 것,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는 것, 그 이야기들에 기대면 조금 덜 외로워진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여기서 고이 접어, 나빌레라.


이 시리즈를 갈아 엎고 다시 시작하면서 매일 하나의 다정함을 기록하자 했는데 역시나 많이 밀렸다. 기록하지 못했어도 기억하는 다정함이 있어 다행이다.


지난 오월에 공방 선생님들에게 델피늄을 드리며 "청출어람의 '청'이 되어 주신다면 '람'이 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라고 쪽지를 써드렸는데, 어쩔 줄 몰라하셨다. 나도 어쩔 줄 모르겠다. '람'되겠다 고백하지 못한 '청'이 너무 많아서. 쪽빛은 여러 겹의 푸른빛이 쌓이고 쌓여야 만들어지는 색깔이구나. 그러면 나는 더 쌓고 쌓고 덧칠하고 덧칠해서 칠흑이 될 테야.




어쩌면 100미터 앞의 갈림길은 언제까지나 100미터 앞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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