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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y 20. 2017

407호 : 赤牌

백수동 35번지 이야기

百修洞 三十五番地 斷面圖 · 백수동 35번지 단면도


407호에는 왼쪽 가슴에 ‘붉은 이름표’를 단 사람들이 산다. 그들의 붉은 이름표는 여자에게 비난받아야 할 것, 외면해야 할 것,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할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보아야 할 것,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 것, 어쩌면 우러를 수도 있는 것을 의미했다. 여자도 그 붉은 이름표를 갖고 싶어서 이를테면, 과외 같은 것을 받으려고 들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는데 불과 몇 개월 전부터 여자는 붉은 이름표를 ‘빨간딱지’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내 것이지만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불안, 질투, 절망, 설움… 뭐 그런 복잡다단한 감정 1%와 99%의 실망으로 채워진 이름이다. 실망하였으나 저버릴 수 없어 여자는 매우 난감했다. 대단히 실망하였으나 끊어낼 수 없어 무척 실망스러웠다. 붉은 이름표들은 심지어 실망의 이유를 묵인하였기 때문에 더더욱 실망하였으나 따지고 보면 붉은 이름표들이 아니라 그들의 왼쪽 가슴에 붉은 이름표를 달아준 손이 만든 실망이었으므로 더더욱 돌아설 수만은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연좌제, 같은 단어를 곱씹으면서 여자는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하나 싶고… 반듯하게 산다는 게 하아… 정말 겁나 힘들구나 싶었다. 반듯한 것을 반듯하게 지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 줄 알았으면, 그래서 안 태어날 수 있었으면, 이 꼴 저 꼴 안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기회를 놓친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또, 어느 날은 그토록 꼴 보기 싫은 이 꼴 저 꼴들이 그렇게 짠할 수가 없어서 또, 기왕 태어난 거 실컷 울었으면 싶은데 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다시, 다음 생에는 꼭 고양이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여자가 경애와 경외를 담아 부르는 박씨*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선계에 머무는 사람처럼 비쳤다. 누구보다도 단단히 땅을 딛고 사는 사람이었으나 여자가 그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여자도 박씨는 선계에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땅을 굽어보다 어느 선량한 사람이 곤란할 때 제비를 시켜 박씨 전해주는 그런 사람. 그 박씨를 심으면 고급 타자기라든가 잉크를 오래 머금는 펜촉, 마르면 지워지는 잉크 같은 게 나오고, 선량한 사람이 그것들로 정직하게 글 쓰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기왕이면 돈방석이 더 좋았겠지만 닭이든 달걀이든 조삼모사일 테니 선량한 사람도 아쉬운 구석은 없게 될 것 같고, 결국 그 모든 것을 가만 내려다보며 길게 길게 곰방대 연기 내뿜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래서 여자는 부러 굽이 굽이 골목을 돌고 돌아 어느 허름한 점방에서 박씨를 만났다. 같이 좀 가주셔야겠다고 했을 때 대답 대신 내민 박씨의 손에서는 희미하게 알코올 냄새가 났다. 보드카와 먼지와 햇볕을 3:4:3으로 섞어 만들었을 것 같은 냄새. 박씨가 쥐었던 펜에서도 같은 냄새가 날 것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한 번쯤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던 김씨*는 언제부터인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다.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아크릴판 안쪽에 있는 것이었다. 이 느낌적인 느낌을 어떻게 꼬집어 낼 수가 없는데, 아무튼 김씨는 16:1짜리 한정판 피겨처럼 아크릴 상자 속에 있었다.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아닌 느낌적인 느낌. 질투도 선망도 아닌 그런 느낌. 아쉬울 것도 아쉽지 않을 것도 없는 느낌. 친구라고 해도 될지, 아니면 그저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된 김씨는 여자의 고민과 전혀 상관없이 평온할 것이었다.


포비아 씨*는 305호에 있던 그 포비아 씨. 세월에 무뎌진 칼을 숫돌 옆에 내려놓고 305호로 옮겨 갔더랬다. 그럴 거면서 숫돌에 물은 왜 뿌려둔 것인지. 그렇게 옮겨 가면서 포비아 씨는 제 그림자를 407호에 흘려두고 갔다. 포비아 씨가 남기고 간 그림자는 여느 그림자와 다르게 갈빛을 띄고 있었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포비아 씨는 그림자까지 검붉은 핏빛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가 아이였을 때, 아이에게 물푸레나무 커플━101호 이야기 참조━을 소개해 준 것은 그때 그 사람*이다. 그때 그 사람이라고 밖에 부를 말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지만 다들 ‘그때 그 사람’이 되어갔다. ‘그때 그 사람’이라도 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니까 오래 안타까워하지는 않았다. 그때 그 사람이 원미동에 여자를 데려간 것이 물푸레나무 커플을 소개해 주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 무렵 어디쯤에 데려갔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원미동을 걸으면서 꽤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 때문인지 원미동이 워낙 요상한 동네였기 때문인지 여자는 지금도 원미동이 어디에 있는 동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어떤 골목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기억나는 거라고는 여자의 손에 감기던 그때 그 사람의 팔뚝, 동그란 어깨, 바람 불면 맡아지던 섬유유연제 냄새 같은 것이 전부였다. 한번 가봤던 길을 찾지 못하고 한번 가봤던 곳을 알아보지 못할 때마다 여자는 제 몸에게 다그쳐 묻고 싶은 지경이 되었는데, ━대체 너라는 몸은 기억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고, 기억할 수 있기는 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때 그 사람과 원미동에 다녀온 후 생긴 버릇이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여자는 누군가와 함께 갔던 길은 유독 더 기억하지 못했다. 낯선 공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던 사람의 무엇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A와 갔던 곳에 B와 가더라도 공간을 기억해내는 일이 드물었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공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공간보다 사람이 더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가 어떤 공간을 기억한다는 것은 나쁜 사람과 나쁜 일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을 함께 했다면 언제고 또 기억을 불러내고 싶어서라도 공간을 기억해 둘 필요가 없었지만, 나쁜 사람과의 나쁜 기억이라는 부비트랩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공간을 기억해 둬야 했다. 받고 싶지 않은 연락처를 지우기보다 ‘받지 마’라고 이름을 바꿔 놓는 게 더 나은 것처럼.


젊은이*는 피로(疲老) 해 보였다. 무거운 하늘 아래 앉아서 바람이 숨 쉬는 소리를 들을 때, 그것이 바람소리인지 땅이 내쉬는 한숨인지 모르겠을 때, 자꾸 아래로 좀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건 땅바닥이 아니라 땅 위에 앉아있기 때문인 것 같을 때,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들의 발자국이 보이는 것 같을 때, 젊은이는 펜을 들었다고 했다. 펜이 많이 무거웠다고 했다. 무거운 펜으로 꾹꾹 눌러쓴 종이뭉치를 받아 들고 여자는 피로한 젊은이를 마주 볼 수 없었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여자에게는 우산이 없었고, 비가 내리면 곤란했고, 그래서 젊은이를 마주 볼 수 없었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싶어 고개를 든 여자의 눈 앞에 젊은이의 손이 있었다. 군데군데 잉크가 묻은 손, 셀 수 없이 많은 주름 하나하나가 다 거칠어 보이는 손바닥이 내려가고 나타난 젊은이의 눈은, 너무나 가득히 텅 비어 있었고 그의 눈빛을 마주 보았다 느낀 그 순간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여자는 심리테스트의 일종으로 혹은 어떤 주술의 일환으로 색깔 바라보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색깔을 다루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 이 컬러리스트*의 전공 색깔은 회색이었다. 하양과 깜장의 가운데쯤, 빛이 들기도 들지 않기도 하는 그 어디쯤에 있는 색깔이었다. 컬러리스트는 자신의 방 ━그의 방에는 쪼그려 앉아야 할 것 같은 나무 의자 하나와 커다란 창, 창에 걸린 블라인드가 전부였다━ 창가에 앉아 길게 늘어진 블라인드 줄을 잡고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멍하니 있을 때는 작은 구슬을 꿰어 놓은 것 같은 블라인드 줄을 묵주 알 세듯 세었고, 어떤 생각을 시작하기 시작했을 때는 양 손에 블라인드 줄을 쥐고 염주알 굴리듯 줄을 굴렸다. 그러다 문득 블라인드를 천천히 열고 닫기를 반복했는데, 그러면 네모난 방바닥은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천천히 바뀌었다. 이따금씩 방바닥이 그림자로만 채워질 때, 검지도 희지도 않은 색깔을 두고 컬러리스트는 고민에 빠졌다. 올라가야 할지 내려가야 할지 덩달아 고민에 빠진 블라인드 사이로 비어져 들어온 빛이 바닥에 깔린, 검지도 희지도 않은 색깔을 잘박거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둠과 빛 사이에 있는 그림자를, 회색이라고 불리는 색깔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좀 더 짙어져야만 하는지, 옅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 어떡하든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회색을 대신해 고민에 빠진 컬러리스트는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면 방을 나섰다. 컬러리스트는 일출과 일몰 사이, 어둠과 밝음 사이… 수없이 많은 사이를 고민했고, 고민하기 위해 매일 사이들의 사이를 걸었다. 여자는 그런 그를 위해 빛이 잘 드나들 수 있도록 이따금씩 그의 방을 찾아가 커다란 창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여자가 어떤 ‘사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206호에서 올라온 손전등을 든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잊을 뻔했다. 손전등을 든 여자가 붉은 이름표들의 맨 앞에 서서 손전등을 비춘다.


35번지에 사는 사람들의 연령은 대개 아주 어리거나, 아주 나이가 많거나 둘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물론 기준은 여자의 나이였다━ 겯고 틀만한 또래라고는 차가운 도시 여자*가 유일하다시피 했다. 도시에 살고 있었으니 ‘도시 여자’라 부르는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었지만 온도에 관한 수식어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도시 여자가 차가운 것은 되바라졌기 때문이었는데, 그게 정말이라면 차라리 뜨거운 도시 여자가 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어쨌든 여자는 오랜만에 또래와 한참 수다를 떨었다. 사는 게 얼마나 팍팍한지, 삶을 팍팍하다 못해 버석버석 소리 나도록 말려버리는 존재에 대해서, 그런 것들과 어찌 됐든 공생을 하긴 해야겠는데 꼭 해야 하나 싶게 비협조적인 망할 존재들에 대해서, 다음 생에는 여자만 아니면 무엇으로든 태어나도 좋을 것 같다고, 뭐 그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장황한 수다가 끝나고 차가운 도시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는데 그녀가 ‘차가운’ 도시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돌아보아 뭐하나 싶었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 돌아보지 않는 걸음은 결연한 데가 있었고, 그 결연함은 다시 만날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차가운 도시 여자는 그랬다.


붉은 이름표를 달고 있으나 이름이 쓰여있지 않아서 부를 수 없는 이름*들이 있었다. 어쩌면 부르고 싶지 않았는지도….


나쁜 남자*가 있다기에 만났다. 여자는 종종 나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쁜 사람이 되기는커녕 그저 나빠지기만 해서 ━삼재가 삼 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들삼재니 뭐니 도합 9년이나 된다는 것을 알고 기함을 할 만큼, 그래서 이 삼재는 대체 뉘 집 삼재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을 만큼 아빠지기만 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때는 조금 간절히 나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빠질 바에야 나쁜 사람이 되면 좀 덜 나빠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나쁜 사람이 되는 방법이라도 얻어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나쁜 사람이라면 여자든 남자든 가리지 않고 만났는데, 이제와 헤아려 보면 나쁜 여자보다 나쁜 남자가 훨씬 많았던 듯하다. 여자는 ‘그 이유’에 대해, 여자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프레임 때문일 거라고, 누군가 뷰파인더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원하는 쪽으로 이리저리 몰아 대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쁜 남자는 그저 나쁜 남자였다. 나쁜 남자가 갖춰야 할 것들을 적당히 갖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나쁜 남자였다. 도대체 어디까지 나빠야 제대로 된 나쁜 남자일지 여자도 알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착한 남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꾸 응달로만 걷는 남자의 곁에서 슬며시 빠져나왔다.


산은 좋아하지 않아도 숲은 좋아했던 여자는 종종 숲길을 걸었다. 따지고 보면 산이나 숲이나 높낮이가 있고 없음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는데 그 작은(?) 차이가 여자에게는 꽤나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아득하게 긴 시간이 느껴질 때, 그래서 서른몇 살이 아니라 삼백 몇 살쯤 된 것 같은데 여태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질없을 때, 그래서 남은 생을 헤아려보다 아직도 남은 것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아찔하여서 ‘가는 데 순서 없다’는 그 말이 꼭 여자에게 들어맞기를 바라게 될 때, 그러나 그런 생각까지도 부질없어지면 여자는 무지근한 피로를 스카프처럼 두르고 숲길을 걸었다. 그렇게 숲길을 걷다 보랏빛 슈트 입은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여자가 대단히 좋아하는, 딱 알맞은 농도의 보랏빛 슈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슈트의 빛깔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 여자는 서두르지도 미적거리지도 않으면서 걸었다. 그렇게 같이 걷는 것도 따로 걷는 것도 아닌 채로 얼마나 걸었을까, 남자가 갑자기 뒤돌아섰다. 문득 눈에 띈 개양귀비에 시선을 주며 걷고 있던 여자는 남자의 가슴께에 머리를 쿵, 박을 수밖에 없었다. 깜짝 놀란 여자가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와 여자의 시선이 부딪히고, 마치 비어 있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깊고 까만 남자의 동공에 여자가 한 번 더 놀라려는데 남자가 다시 뒤돌아섰다. 마치 여자에게 함께 걷자는 듯 “어떤 숲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곤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남자는 어떤 숲에 대해 들려주었다. 어쨌든 계속 걷지 않으면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걸었다. ‘어떤 숲’에는 아주아주 긴 뱀이 있었다고 했다. 아주아주 긴 뱀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숲에 있는 모든 나무에 제 몸을 감고, 더 이상 감을 나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제 꼬리를 입에 물었단다. 그리고… 야금야금 꼬리를 삼키기 시작했다. 나무에 감긴 뱀의 몸통이 팽팽해질 때까지, 팽팽해진 몸통이 나무들을 부러뜨릴 때까지, 부러진 나무들이 풀썩 뱀의 몸 위로 주저앉을 때까지, 그리하여 어떤 숲이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숲이 사라진 자리에서 작고 가느다란 뱀이 한 마리 나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남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마침 바람이 불었고, 바람에 떠밀려 날아든 날벌레를 손사래 치며 밀쳐내던 여자가 고개를 드니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황망하여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보랏빛 슈트를 입은 남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어느 방향으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남자에게서 맡아지던, 남자와 어울리지 않게 비릿한 향도 이내 사라져 버렸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사람을 부를 때 그저 김서방이라고 부르는데, 이놈이나 저놈이나 도깨비 입장에서는 그놈이 그놈… 매한가지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김서방’의 입장에서는 그 도깨비가 그 도깨비 같아도 이모저모 다른 면모가 있고 그 다른 부분을 콕 짚어서 외눈 도깨비니 외다리 도깨비니 낮달 도깨비 같은 이름을 붙여 불렀다. 김서방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도깨비는 개의치 않겠지만. 이 김서방*은 “도깨비”가 만들었음직한 물건이나 “도깨비”가 사람 행세하는 것 같은 사람에 관심이 많아서 “김서방”이다. 김서방은 자신이 찾은 물건이나 사람에 관한 것을 기록해 두기를 좋아했다. 생각보다 기록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두고 보면 김서방은 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셈이었다. 여자는 종종 김서방이 남긴 기록을 몰래 들춰보았다. 그게 뭐든 남몰래하는 걸 내켜하지 않는 여자였지만 김서방의 기록은 어쩐지 몰래 볼 때가 가장 좋았다. 두근 반 세근 반 격정의 다이어트와 요요를 오가는 심장을 부여잡고 김서방의 들여다볼 때면 탐정이 된 것 같았고 은밀하지만 위대한 모종의 일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장래희망 100가지 중 하나였던 비련의 ━왜 ‘비련’이 붙어야 하는지, ‘비련’이 주는 후광효과는 무엇인지 언젠가 꼭 짚어볼 요량이다━ 스파이를 간접 체험하는 기분에 김서방의 기록만큼은 자꾸 훔쳐보게 되는 것이다. 아쉬운 점 한 가지는 김서방도 여자가 훔쳐보는 것을 알면서 모르는 체 한다는 것. 첩보 느낌이 좀 덜 사는 것 같아 별로다.


돌이킬 수 없음에도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야 했으나 그 어두컴컴한 시간 속에서도 낭만으로 빛나던 사람들이 있었다. 낭만서객(浪漫書客)*이 그랬다. 그들은 아름다운 문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문장이 지금까지도 선연히 빛날 수 있는 건 시간의 피부 위에 그들의 슬픔, 그리움, 한, 죄, 사랑… 같은 것들을 새겼기 때문이다. 칠흑같이 검은 잉크로, 날카로운 철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오해이고, 무엇을 하든 받을 수 있는 것이 오해다. 무어라도 하고 받으면 그나마 덜 아플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받아야 한다면 헤아릴 수 없이 아픈 것이 또 오해인데 오해받는 남자*는 많은 것을 하고 또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오해를 받아왔다. 얼마만큼은 여전히 받고 있고…. 하필이면 나비를 언급한 것 때문에 오해를 받게 된 남자는, 아마 자신과 관한 어떤 풍문도 듣지 못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이 주인공인 소문을 들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겠지만, 그만큼 그는 꽤 단단한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또 그가 받은 무수한 오해들이 안타까워지는 것이다. 그가 언급한 나비가 배추흰나비인지 호랑나비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나비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오래 오해를 받아온 남자이기 때문에 공손히 무릎을 모으고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뭔 말인지 알겠는데 뭔 말인지 옮길 수 없음이 안타까웠지만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여자의 잘못이었기 때문에 또 한 번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407호 사람들

박씨 : 죽음의 한 연구 / 박상륭 / 문학과지성사 / 초판 5쇄 1989년 1월 30일 / 5,000원 § 열명길 / 박상륭 / 문학과지성사 / 초판 3쇄 1988년 4월 20일 / 4,500원

김씨 : 아랑은 왜 / 김영하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15일 / 7,500원

포비아 씨 : 헤이, 우리 소풍 간다 / 백민석 / 문학과지성사 / 3쇄 2003년 11월 25일 / 8,500원

그때 그 사람 : 원미동 사람들 / 양귀자 / 문학과지성사 / 재판 8쇄 2000년 10월 20일 / 7,500원

젊은이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 문학과지성사 / 4판 6쇄 1998년 2월 10일 / 7,000원

컬러리스트 : 회색인 / 최인훈 / 문학과지성사 / 재판 15쇄 2005년 3월 11일 / 8,500원

손전등을 든 여자 : 새 / 오정희 / 문학과지성사 / 초판 7쇄 2000년 5월 23일 / 5,000원

차가운 도시 여자 : 낭만적 사랑과 사회 / 정이현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16일 / 8,000원

부를 수 없는 이름 : 주말여행 / 홍성원 / 문학과지성사 / 재판 2006년 3월 9일 / 9,000원 § 가장 멀리 있는 나 / 윤후명 / 문학과지성사 / 재판 2001년 8월 9일 / 8,000원 § 일식에 대하여 / 이승우 / 문학과지성사 / 재판 2012년 6월 5일 / 12,000원 § 우리는 달려간다 / 박성원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6일 / 8,000원 § 퀴르발 남작의 성 / 최제훈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27일 / 11,000원 §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 / 하창수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30일 / 10,000원

나쁜 남자 : 포주 이야기 / 김태용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월 31일 / 11,000원

보랏빛 슈트 입은 남자 : 향 / 백가흠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0월 15일 / 12,000원

김서방 : 펭귄 뉴스 / 김중혁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10일 / 10,000원

낭만서객(浪漫書客) : 탈출기 / 최서해 / 문학과지성사 / 초판 6쇄 2010년 1월 15일 / 9,000원 § 까마귀 / 이태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2월 1일 / 8,000원

오해받는 남자 : 장자를 읽다 / 양자오 문현선 / 도서출판 유유 / 초판 1쇄 2015년 11월 24일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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