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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Sep 30. 2017

百修洞 三十五番地이야기 : 後時



꼬박 1년 전부터 오늘을 기다렸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스물여덟 개의 이야기를 쓰는 동안 가장 고대했던 순간이고, 어떻게 쓸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래서인지 막상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저 후일담 쓰는 일 자체를 기다린 셈이다.



시작은 재건축이었다. 이사하면서 책장을 다시 쌓아야 했던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네모 반듯’하지 않아서 네모 반듯한 것을 수평, 수직 맞춰 세우자면 어정쩡하게 공간이 남았다. 청소기나 손을 넣기도 힘든 공간에는… 고양이 털이 쌓이겠지, 투덜거리면서 책장을 쌓았다.

어느 공간에서나 쉽게 스며들 수 있는 책장을 갖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 본가에서 나올 때 가장 신경 썼던 것이 책장이었다. 책과 보통의 책장 길이를 이리저리 재서 가장 이상적인 상자의 크기를 계산했다. 그저 종이에 선 몇 개 그린 것뿐이었지만 대단한 설계도라도 되는 듯 목공소에 가 도면을 내밀었다. 당시 나무 두께는 15mm였는데 몇 년 후 다시 맞추려고 하니 그 두께는 없다고 했다. 전에도 여기서 맞췄다고, 갖고 있는 거 다 15mm니까 새로 맞추는 것도 15mm 여야 한다고 우겨서 결국 15mm 두께의 나무로 맞췄다. 그렇게 공들인 책장은 나름 시간의 흔적도 담을 줄 알아서 볕 들던 곳은 색이 바래고, 얼룩지고, 조금씩 유격이 틀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네모 반듯하니까 네모 반듯하게 쌓고 싶었지만 이사 온 집은 네모 반듯하지 않아서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네모 반듯한 것을 좋아한다. 직선이라면 단정하고 곧게 뻗어야 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증명해야 한다.

빈 상자를 쌓은 다음에는 속을 채워야 했다. 가나다라 순으로 정리하면 책 제목을 기준으로 둘 것인지, 출판사를 기준으로 둘 것인지 정해야 했다. 애초에 다른 분류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기 복잡했고, 책장은 자주 바뀔 수 있었으니 기준은 자주 바뀌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출판사를 기준으로 책을 묶었다. 단, 101호에 사는 사람들은 열외였다. 그들은 ‘시작’이었으니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판사 별로 책을 묶고 애정을 담아 잘 보이는 곳 순서대로 상자들을 채웠다. 채우고 나니 보기 좋았다. 고양이 캣타워로 쓰기에 딱 좋았다.

어느 날 책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상자들을 하나씩 쓰다듬다가, 상자 속 책들을 꺼내 보다가, 책장이 아파트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책장이 아파트라고 치고, 상자 속 책들이 거기 사는 사람들이라 치고… 그런 걸 써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메모해 두었던 것 같은데, 어디에 메모해 두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기특하게도 몸이 그 메모를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백수가 사는 동네였기 때문에 백수동이 되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때의 나이가 서른다섯이었기 때문에 35번지가 되었다. 케케묵은 독서노트를 쓰는데 ‘사람’을 가져와야 할까 싶었지만 이 동네, 이 나이를 만든 것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끝까지 ‘사람’을 쓰자고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독서노트가 탐탁지 않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다독왕이 되려고 엄청나게 책을 읽었다. 물론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어차피 엄청나게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기왕 읽는 거 다독왕이나 해 볼까, 하는 심산이었다. 다독왕이 되려면 읽은 책들을 ‘인증’해야 했기 때문에 공책에 책 이름과 저자, 출판사 같은 정보와 읽은 날짜, 줄거리, 감상을 적어야 했다. 머리 굵어지고 보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줄거리를 적고, 교과서에 실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상평을 쓰고…. 이것이 독서노트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인공’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수 있을까. 그때 독서노트를 채웠던 책들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때 그 ‘다독왕 뽑기’는 그저 경쟁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에. “취미”도 경쟁을 해야 했다니. 그래서 다독왕 1등이 되지 못했나 보다. 다독왕이면 다독왕이지 그 와중에 순위를 매길 것은 뭐람.

나이가 들면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책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워낙 빨리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야 할 길을 매번 백 미터 달리기 하듯 뛴 셈이다. 사실 그 속도를 늦추려고 무던히 애썼는데 잘 되지 않았다. 어쨌든, 속도와는 별개로, 한번 잡은 책은 울고불고 잠 못 들고 별 난리굿을 다 치르며 읽었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걔가 걔인지, 걔가 뭘 어쨌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애에 대한 느낌은 남아 있어서 종종 그 느낌을 불러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숱한 대화가 백수동과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읽은 책 제목이 어떻고 저자는 누구고 줄거리는 이러저러한데 저러 이러한 교훈을 얻었다는 식의 독서노트를 쓸 수도 없었고, 쓸 수 있었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을 불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백수동이라는 동네의 지형을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제대로 된 기록이 없었으므로 어쩌다 여기에 습지가 생기고 동산이 생기고 땅이 파였는지 증언해 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캐물었다. 막상 들으려니 묻어두었던 온갖 작것들이 다 튀어나와서 괴로웠고, 끈질기게 묻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더듬더듬, 밀린 월세 내듯 증언해 주었다. 그 증언을 내키는 대로 받아 적었다. 좋은 문장을 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말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문장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받아 적는 사람에게도 좋은 문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날씨나 사람들 기분에 따라, 받아 적는 사람 마음에 따라 얼마간의 “생략”은 있었지만 말하는 사람이 말하는 대로, 듣는 사람에게 들리는 대로 받아 적었다. ‘내키는 대로 받아 적었다’고 쓴 것은 그래서다.



백수동 이야기는 여기서 한번, 매듭을 묶는 것뿐이다. 백수동은 오늘도 지형이 바뀌고 있고, 내일이 지나서야 들을 수 있을 오늘의 증언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백수동 35번지 이야기가 그룹 인터뷰였다면 앞으로는 개별 인터뷰가 될 것이다. 주로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겠지만 다시 불려 나와 생판 다른 이야기를 주절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랬구나.

이 말은 사람뿐만 아니라 책에도 해당된다.

그래서 한 사람을 기록하는데 책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이것은 결국 기록이다.

백수동 35번지에 들어선 어떤 건물에 사는 주민들이 회고하는 백수동 35번지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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