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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y 15. 2019

구슬 항아리

 百修洞 三十五番地 이야기 : 流浪船 

여자는 일본 사람에게서 書習紙에 구슬 항아리* 하나를 얻었다. 항아리에는 50개의 구슬이 담겨 있었는데 한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것부터 손바닥의 주름 사이로 숨어버리는 것까지 크기, 모양, 색깔이 모두 달랐다. 여자는 구슬마다 붙여진 이름이 좋았다. 마음이 헛헛한 날이면 손에 집히는 대로 한 알 꺼내 항아리 옆에 놓고 구슬의 이름을 읊조렸다. 구슬의 이름을 부르면 여자도 구슬이 된 것 같아 헛헛하던 마음이 미지근해졌다. 여자는 미지근한 마음이 다시 식을 때까지 가죽 주머니 바닥까지 손을 넣어 휘휘 저었다. 마음이 다 식으면 손바닥과 팔뚝에 감겨들던 구슬들을 한 줌 골라내 붉은 실에 꿰었다. 붉은 실에 꿴 구슬은 어느 날은 팔찌가 되고 반지가 되고 그저 기다란 줄이 되었다. 여자는 팔찌, 반지, 그저 기다란 줄이었던 것을 다시 잘라 가죽 주머니에 구슬을 투두둑, 떨어뜨리며 주문처럼 항아리 속 구슬의 이름을 읊었다. 


베바라사나*


그 어느 날엔가 여자가 부른 구슬의 이름이었다.



구슬 항아리: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 -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수언어에 대하여, 요시오카 노보루 · 니시 슈쿠 · 문방울, SEEDPAPER, 초판 1쇄 2018년 3월 12일, 13000원


VEVARASANA: (어디에 있어도) 서로 이해할 수 있다 | 헤레로Herero어: 사용인구 20만 명 | 사용지역: 나미비아 · 보츠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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