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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y 21. 2019

淡淡한 사람들

百修洞 三十五番地 이야기 : 流浪船

여자는 性을 무너뜨리고 城을 쌓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무너뜨리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는 동안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던 말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던 말을 붙들고 간신히 고민에서 빠져나온 여자는 性을 빠져나와 새로운 城을 짓는 여자들을 만났다. 여자들을 만나는 동안 여자가 셋이면 나무 접시가 들논다는 말은 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곰곰 생각해보니 얼마나 즐거우면 가만히 있던 접시까지 어깨춤을 추겠나 싶어서 접시가 들놀든 깨지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까, 여자가 만난 사람들은 그저 담담했다. 마치 파란색 불꽃처럼 차갑고도 뜨거워서 차분하고도 평온했다. 그들이 내비치는 평온은 그러나 불꽃의 ‘파란색’ 일뿐, 저마다 가진 온도는 모두 뜨거워서, 엉뚱하게도 물이 불보다 힘이 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炎)의 온도를 고작 세 개의 물방울(氵)이 감쪽같이 감춰버렸다는 것만으로도 물이 불보다 세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 사람들 가운데 미숙*은 누가 봐도 ‘불행不幸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보기에 미숙은 차라리 불행不行한 사람이었다. 꼼짝달싹 할 수 없게 갇혀 있는 것일 뿐,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하는 곳으로 갈 사람이었다. 미숙이 담담하게 잇고 있는 하루들이 쌓여 담담潭潭해지면 더 이상 불행不行할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숙은 담담淡淡하게 살아지다, 담담潭潭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사람이었다.



미숙: 올해의 미숙, 창비(창비만화도서관 02), 초판1쇄 2019년 2월 18일,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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