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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n 15. 2019

입양된 사자

百修洞 三十五番地 이야기 : 流浪船

여자는 함께 살고 있는 가을, 봄에 대해 생각한다. 두 계절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9월 27일부터였다. 여자는 함께 산 지 보름만에 갑작스럽게 고양이별로 돌아간 미오를 슬퍼하다가, 미오가 두고 간 고양이용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양이는 고양이로 잊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고양이카페의 입양게시판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 자꾸 마음이 가는 입양글을 보게 되었다. 사연인 즉,

놀이터에서 임신한 채 괴롭힘 당하던 고양이가 좋은 사람을 만나 네 마리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모두 함께 살 수 없어 새끼 고양이들을 입양할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네 마리 중 한 마리는 이미 좋은 집을 찾아 떠났고, 세 마리가 남아 있었다. 여자는 셋 중 두 마리를 데려오기로 했다. 아무리 고양이는 고양이로 잊는다지만 한 번에 두 마리를 데려와도 괜찮을지 오랜 고민 끝에 고양이에게도 낯선 곳에서 의지할 고양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여자가 집을 비웠을 때에도 혼자보다 둘이 기다리는 게 조금 더 수월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입양신청서를 작성했고, 좋은 사람은 집까지 찾아와 안전한 집인지 확인한 뒤에 두 고양이를 두고 빈 이동장과 함께 돌아갔다. 그 날이 2011년 9월 27일이었다. 두 고양이는 태어난지 삼개월만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어미를 떠나 새로운 인간과 살게 됐다.

짤막한 사연에 마침표를 찍고, 여자는 이토록 자유의지가 강한 동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함께 살게 된 인간에게 애정을 표한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새삼스러웠다. 처음 몇 개월은 서로 말이 많았다.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소리를 던진 것이었지만 그 소리들 덕분에 그런대로 서로의 영역을 나누고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일 뿐, 두 고양이도 여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온전히 타의에 의해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로, 여자는 온전히 자의에 의해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생명체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로. 두 고양이가 어떻게 생각하든 여자로서는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자유의지만큼 큰 책임도 없으니까. 어쨌든 의무 이행의 일환으로 여자는 입양된 사자*를 찾아갔다. 아무리 여자가 한때 꾸었던 꿈 가운데 하나가 널찍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자를 기르면서 아이를 낳으면 사자의 등에 태워 산책을 다니는 것(결국 ‘부동산’과 ‘동산’의 부재 때문에 포기했다)이었다고 해도, 또 입양된지 오래라 야생성을 잃었다고는 하더라도 사자는 역시 맹수니까 입양된 사자가 사는 집의 현관문을 열기 전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문을 여니 택배박스에 제 몸을 구겨 넣은 채 잠들어 있는 사자가 있었다. 고양이는 크나 작으나 다 고양이라더니, 그 말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여자는 그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입양된 사자: 거실의 사자, 애비게일 터커 · 이다희, 도서출판 마티, 초판 2쇄 2018년 2월 28일,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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