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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n 25. 2019

백수白手 VS 백수百修

百修洞 三十五番地 이야기 : 流浪船

여자는 2010년부터 백수百修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가을, 여자는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결정일수록 점심메뉴 고를 때보다 더 쉽게 정해버린 것이다. 생활이 가능할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없었고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고 모아 놓은 돈도 없었다. 정말 속도 없이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하고 싶은 걸 했다. 제 입에 풀칠도 해야 했으니 돈이 되는 일이 있을 때 마다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싶은 일과 돈 되는 일 사이를 오가며 정신없는 나날을 7년쯤 보냈을 무렵 여자는 백수白手*을 만났다. 외롭던 때였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물을 곳 없는 시간들은 여자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저 걷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도 여자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 백수들을 만났을 때 반가웠고 이내 실망했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들도 여자와 같은 백수百修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망한 이유는 간단하다. 소개한 사람이 그들을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된 것처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듯이,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백수가 되었다는 듯이. 이제와 생각하니 소개자는 퍽이나 무례했다. 백수들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런 식으로 소개한 것은 정말 무례한 일이지 않은가. 이제와 고백하자면 여자도 무례했다. 질투 때문이었겠지. 집도 있고 시중들 사람도 있고 먹고 살만 했으니 그렇게 했을 거라는 시답잖은 질투 말이다. 어휴,

어쨌든 그들은 사람들이 웃프게 말하는 백수白手가 아닌 백수百修였고 제법 역사 깊은 직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그것이 여자의 외로움을 어찌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결이 다를지언정 비슷한 외로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여자에게 의미 있는 발견이었다. 만수산 드렁칡이 어떻게 얽히든 설키든 계속 나아가면 된다는 이정표 같은 것을 찾은 기분이었다.


백수白手들: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길진숙, 북드라망, 초판 1쇄 2016년 1월 25일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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