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修洞 三十五番地 이야기 : 流浪船
여자가 어려서 좋아하던 과자 상자 안쪽에는 숨은 그림 찾기가 그려져 있었다. 우산, 버섯, 초… 그런 잡동사니가 토끼 궁둥이나 나무 둥치 같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 대여섯 개의 잡동사니가 숨겨져 있었는데 여자는 꼭 하나씩 찾지 못했다. 어디에 있는지 도통 보이지 않았고, 대신 찾아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없어서 마지막 남은 한 개는 영영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찾지 못한 숨은 그림이 잊히는 동안 여자는 과자보다 술이 더 좋은 나이가 되었다. 과자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던 어느 밤, 그림자 속에 숨은 그림들*을 발견했다. 어디서 본 듯도 하고 못 본 듯도 한 숨은 그림들은 그림자 속에서 여자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어렵사리 숨은 그림들 중 하나를 떼어낸 여자는 어차피 다 찾지도 못할 것을 애초에 찾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괴상하게 생겨서 어떻게 입을 떼야할지 난감했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난감해하는 동안 처음 빠져나온 그림이 다른 그림을 잡아끌고, 그 그림이 또 다른 그림을 끌어내고, 그 그림이 뒤에 있던 그림을 일으키고… 잠깐 사이에 백수동은 온통 괴상하게 생긴 것들로 가득 차버렸다. 그림들이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여자는 그림자란 화수분 같은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여자는 어둑한 것이 어두컴컴한 것들을 자꾸 뱉어내는 그 모습을 무서워하다가 신기해하다가 이내 궁금해졌다. 그림들은 정말 그림자 속에 있었는지, 어쩌다 그림자 속에 있게 되었는지, 하필이면 왜 지금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계속 백수동에 머물 것인지…. 그림들은 말이 없었다. 여자도 말이 없었다. 여자가 마시던 술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백수동 여기저기에 흩어져 앉아 있던 그림들이 하나 둘 일어나더니 줄을 서기 시작했다. 여자가 마지막 한 잔 술을 비웠을 때 그림들은 그림자 속에서 나올 때처럼 자그마한 노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눈 앞에서 펼쳐지는 괴이한 풍경보다 꺼내 놓은 기억이 없는 노트가 거슬렸다. 마지막 그림의 긴 꼬리가 노트 속으로 후루룹, 빨려 들어가자마자 살펴본 노트는 분명 여자가 꺼내 둔 적 없는 것이었다. 서랍 깊은 곳에 있어야 할 노트가 왜 밖에 나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노트는 여자가 소녀일 때 쓴 일기장이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그 일기장을, 여자는 반갑고 또 반갑지 않은 마음으로 집어 들어 탁 소리가 나도록 펼쳐져 있던 페이지를 닫았다. 그러고는 원래 일기장을 넣어 두었던 상자를 찾기 위해 여남은 개의 서랍을 뒤졌고, 원래 있던 상자 속에 일기장을 넣은 다음 좀 더 큰 상자에 한 번 더 넣은 뒤 서랍 깊숙이 넣었다. 탁 소리가 나도록 서랍을 닫은 여자는 그제야 안심이라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 나쁜 꿈을 꾸지 않아도 될 거야… 당분간이겠지만.”
숨은 그림들
- 동이귀괴물집, 물고기머리, The Kooh, 1쇄 2018년 7월 23일
-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 / 이강훈, 워크룸, 초판 1쇄 2018년 12월 31일, 2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