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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쓰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뭔가 쓰겠다는 의지도 마땅히 축하해야 했다. 자로 잰 듯이 꼭 들어맞는 핑계다. 축하에는 역시 중국집이지. 정말이지 멋으로 가득해서 맛도 풍요로운 동네 중국집에 갔다. 여느 때처럼 멋으로 빚은 것 같은 여사장님이 반겨주셨다. 사장님이 두 분인데, 두 분을 또렷하게 구분 지을 방법이 성별뿐이라 굳이 ‘여사장님’이다. 액션 누아르 영화에서 걸어 나온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진 사장님이 주방에 중국어로 주문 넣는 모습은 그 옆에서 응원봉이라도 흔들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만다.
맵지만 고통스럽지 않고 자꾸 먹고 싶게 만드는 홍쇼갈비(등갈비와 죽순, 버섯 2종류, 청경채, 이름 모를 매운 고추가 담뿍 들어가고 전분물을 넣어 걸쭉하게 나오는 요리)와 차돌탄탄면을 주문했다. 몇 개월 전부터 면요리를 먹지 않지만 동석자 ㅂ을 위해 고른 메뉴다. 면요리를 멀리하기 전에 맛을 보았기 때문에 ‘아는 맛’을 차마 모르는 척할 수 없기도 했다. 국물만 맛보아도 너무나 좋은 걸. 이 중국집은 향신료를 풍부하게 잘 쓰기 때문에 국물 한 모금에도 음식을 다 먹는 기분이라 면, 그 차지고 쫄깃하고 부드러운 면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따악, 한 젓가락만. 음식이 나오면 말없이 음식을 먹는다. 할 말이야 많지만 맛있으니까 맛있게 먹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홍쇼갈비 한 대에 소주 반잔, 차돌탄탄면 국물 한 모금을 돌려 먹다 보니 입안은 얼얼해지고 뱃속에 빈자리는 아직 남아있는데 먹을 것이 더 없다. 그럴 땐 역시 추가 주문. 얼얼한 입안을 달래줄 레몬 새우를 주문한다.
레몬새우가 나올 때까지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9년 전에 썼던 글을 다시 꺼내 새로 쓰기로 했다는 것, 넋을 놓고 보게 되는 아름답고 신비하고 사랑스러운 자연 다큐멘터리가 선사하는 비관, 전생에 대한 추측, 자신만 알고 있는 사람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 인류애를 갉아먹는 사건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못 다했는데 레몬새우가 나온다. 이번에는 레몬새우 반마리에 소주 반잔, 차돌탄탄면 국물 한 모금을 돌려 먹는다. 홍쇼갈비 덕분에 여유가 생겨서 먹으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멋있고 자애로운 사장님이 군만두(큼직한 만두와 튀긴 고추, 땅콩을 곁들인!) 서비스를 주신다. 군만두를 위한 소주가 없으니 소주 한 병 더. 군만두는 안타깝게도 쪄 먹는 만두보다 밀가루가 더 많이 들어가지만 그래도 하나, 아껴가며 하나를 먹는다. 아, 겉바속‘쵹’. 대체 저 주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실 궁금하지 않다. 어련히 뛰어난 요리사가 뛰어난 음식을 만들고 있겠지. 맛있는 음식에는 의심하지 않는다. 찬사를 보내면 그뿐.
그릇 세 개를 싹 비우고 남은 소주는 ‘내’ 가방에 넣고 중국집을 나오니 서늘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었다. 며칠 남지 않았을 가을을 걸어 각자의 집으로 간다. 집에 가면 깊은 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잔뜩 먹은 음식과 술을 소화시키는 동안 하루를 곱씹고 내일 해야 할 일을 가늠해보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구분하다 잠들 것이다. 문득 하루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