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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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회사에서 추석 선물로 에어프라이어를 주었다. 회사에서 받은 명절 선물 중에 가장 으뜸이다. 에어프라이어로는 주로 고기를 익혀 먹는다. 4개월 전 뜻밖에 식단 조절을 하게 되면서 한창 정을 붙였는데, 혼자 고기를 먹을 때 매우 유용하다. 마트에서 200g씩 소포장해서 시즈닝까지 된 고기를 팔면서 에어프라이어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했다. 예열이고 뭐고 냅다 고기부터 구워 먹다가 요령이 생겨 양송이버섯과 마늘, 방울토마토 같은 것을 먼저 익히고 고기를 구우니 넘나 좋은 것. 와인은 워터디어힐에 거주하는 멋진 분이 연출 입봉을 축하하며 선물해 주셨다. 아끼겠다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와인을 더 이상 아끼면 안 되겠다 싶었고, 와인을 마시려면 고기가 있어야 했으니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에어프라이어를 돌렸다.


004-01.jpg 오늘 접시에는 방울토마토 대신 브로콜리가 참여했다. 기대 이상의 활약!

에어프라이어는 간편하고 좋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고되다. 채소를 먼저 익히는 동안 이미 식욕은 폭발하기 때문에 고기를 익히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발까지 동동 구르다 드디어 ‘땡’, 맑고 고운 소리가 울리면 호다닥 고기를 접시에 담고 양 손에 칼과 포크를 쥐고 행복한 칼질을 시작한다. 와인이 없으면 그냥 소주를 마시지만 와인을 곁들이면 밥상만큼은 외국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래서 소주를 곁들이더라도 스테이크는 언제나 ‘영화 고기’다. 아, ‘만화 고기(최근 알게 된 ‘만화 고기’에 가장 근접한 고기는 양갈비다)’도 먹어야 하는데 도통 기회가 생기질 않는다. 세 번쯤 에어프라이어를 돌리면 한 끼가 완성된다. 버터 얹어 구운 양송이는 향도 식감도 고기 저리 가라 싶게 맛나다. 구운 토마토는 토마토가 아무리 채소라도 고기만큼 맛나다. 마늘이 아무리 향신료라지만 특히 버터에 구운 마늘은 채소보다 더 먹을 만큼 맛나서 한줌은 먹어야 성에 찬다. 오늘의 ‘영화 고기’는 척 아이 롤인데, 척하면 딱하고 입맛에 꼭 들어맞게 맛나다. 여기에 와인은 자꾸 먹은 것을 깨끗하게 지워 주어서 또 먹게 만드니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분 좋은 도돌이표 완성. 혼자 먹어서 아쉽기는커녕 너무나 좋은 한 끼다. 이래서 다들 혼술, 혼밥 하는가 보다 싶다. 같이 먹고 마셔서 좋은 음식, 좋은 시간들이 많고 많지만 혼자여서 좋은 음식, 시간도 있어야지 않나. 따로 또 함께의 균형을 찾는 방법을 먹고 마시면서 알아간다. 이러니 뭐든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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