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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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오랜만에 야근을 했다. 야근하고 돌아와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했다. 이런 날은 퇴근하고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 들어 고달파진다. 집으로 출근해서 해야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그만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고, 후다닥 청소하고 씻고 노트북이 깨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스텔라를 꺼냈다. 꼴깍꼴깍 마시면서 또 일을 한다. 하루와 하루 사이, 일과 일 사이에서 마시는 맥주는 딱 한 캔이 적당하다. 사무실에서 쌓인 피로가 끼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릿속에 윤활유를 끼얹어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뭐든 빨리 끝내고 침대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조바심에 뻣뻣해진 뒷목을 시원하게 마사지해주는 효능이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한 캔만큼의 효능, 기왕이면 스텔라로. 이름 때문인지 사부작사부작 수다 떠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한다. 스위스로 출장 갔을 때 잠깐 시간이 나서 펍인지, 카페인지 모를 가게 테라스에서 스텔라를 마신 적이 있다. 비가 쏟아지고 아무 생각 없이 비를 보고 들으며 스텔라를 마시던 그 평온한 한 순간이 떠올라서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일로 도망치는 편이다. 크게 한 번 데고 나서 도망을 가더라도 일로 도망가지 말자고 결심했는데 다시 그 못난 버릇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못된 버릇이 적은 돈이나마 벌 수 있게 해 주니 마냥 뭐라고 할 수만도 없고 난감하다. 집에서는 주로 회사에서 하지 않는 일을 한다.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일도 한다. 회사에서 A 분야의 일을 한다면 집에서는 A를 제외한 B나 C 분야의 일을 한다. 나름의 예의랄까. 사이사이 고달픈 나를 달래듯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사흘 출근하는 대가로 받는 월급은 연봉이라고 부르기 수줍어서 규칙적으로 들어오지만 저축이 어렵다. 마음 편히 술 마시는데 필요한 저축, 낡은 옷을 버리는데 필요한 저축, 조바심 내지 않고 월세를 내는데 필요한 저축, 경조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대신 마음이라도 보내야 할 때 필요한 저축,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한 저축까지 다람쥐 도토리 숨겨두듯 저축해야 할 일이 산더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서도 종종 일을 한다. 그래서 회사 일은 사무실에 두고 정해진 퇴근 시간에서 5분 이상 지체하지 않고 퇴근한다. 대신 조금 일찍 출근한다. 혼잡한 버스를 피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면 그날 해야 할 일을 살피기도 좋고, 시간 분배하기도 좋고, 호다닥 해치우기도 좋다. 일하기 싫은 만큼 열심히 하게 되는 역설, 한시라도 빨리 네모난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높여주는 업무처리 속도. 다행히 대부분의 회사는 예술을 원하지 않고, 나 역시 혼을 갈아 넣을 만큼 욕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갈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런 날에는 어떻게든 일을 놓고 술잔을 든다.

그는 집에 돌아오면 늘 술을 마셨다. 집에만 있는 날도 술을 마셨다. 집에 있는 어린이에게 술을 권하기도 숱하게 권했는데, 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린이에게 술을 권했던 것일까. 타고난 핏줄을 그렇게 알리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아무튼 그 모습을 보고 지냈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나 싶지만 나도 집에 돌아와 술 마시는 날이 제법 많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그 마음. 술술 넘어가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든 넘겨보려는 마음 같기도 하고, 제대로 도망칠 용기가 부족해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탄 듯 술술 넘어가 보려는 마음 같기도 한 그 마음. 그래도 아직은 친해지고 싶지 않은 그와 그의 마음. 아이코, 한 캔 가지고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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