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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n 02. 2020

개성 만두에 담긴 음성

Aa Writer: 만두와 소주를 마시다

골목을 에둘러 시장으로 가는 길에 손칼국수 가게가 있다. 그 가게에서 가장 많이 먹은 메뉴는 모순되게도 손칼국수가 아니라 떡만둣국이다. 매번 떡만둣국을 먹으면서 손칼국수나 들깨칼국수, 돌솥비빔밥도 맛있을 거라고, 다음 번에는 꼭 손칼국수나 들깨칼국수를 맛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다 그 가게에 가게 되면 늘 그렇듯 떡만둣국을 시킨다. 소고기 약간, 채 썰어 넣은 당근과 양파, 김가루, 뜨끈한 국물에 무심히 툭 깨뜨려 넣고 휘 저어 익혔을 달걀과 어슷썰어 넣은 떡국 떡, 숟가락 머리보다 훨씬 큼직한 만두 세 개. 주문한 음식이 언제나 나오려나 무심코 주방을 엿보다 떡만둣국에 들어가는 만두가 직접 빚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도 당기는 맛은 어쩔 수 없어 자꾸 '간판메뉴'도 아닌 떡만둣국을 주문하게 된다. 어디서든 만두피 밖으로 소가 비어져 나올 듯 큼지막하게 빚은 만두를 만나면 할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설이면 꼭 만두를 빚었다. 할머니는 면보에 넣은 두부를 싱크대 모서리에 눌러가며 물기를 짜내고, 데쳐낸 숙주를 양 손으로 공글려 물기를 짠 다음 두어 번의 칼질로 토막 내고, 돼지고기와 소고기 간 것을 큰 양푼에 툭툭 던져 넣고, 손질한 숙주나물, 삶아서 다진 당면, 다진 부추, 물기 빼고 으깬 두부를 넣고, 참기름 두 바퀴, 소금과 후추는 그릇 쪽으로 입구를 기울인 병을 왼손바닥 위에 탁탁탁 쳐서 떨어지는 만큼 넣고선 손으로 주물주물 치대어 만두소를 만들었다. 할머니가 소를 만들면 나는 만두피가 될 반죽을 만들었다. 할머니가 플라스틱 그릇에 밀가루를 풀풀풀 담은 뒤 쪼르르 물을 흘려주면 나는 숟가락으로 섞다가 손으로 치대 반죽을 만들었다. 재료들이 완성되면 할머니가 만두피를 만들고 나는 만두를 빚었다. 어느 때는 할머니가 만두를 빚고 내가 만두피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개 만두는 할머니와 둘이 빚었다.

만두피 가운데에 밥 숟가락으로 소를 퍼 올리고 만두피를 살살 끌어 당겨 맞물린 다음 반달 같은 만두의 양 끝을 잡아 꼭 쥐고 나면 작은 손바닥보다 큰 만두가 완성됐다. 처음 만두 빚는 것을 가르쳐 줄 때 할머니는 내가 만두 빚는 것을 가만 지켜보다가 '물에서 갓 건져 올린 손 같다'라거나, '끝이 빼쪽해서 피아노를 치면 잘 치겠다'고 했었다. 그때 물에서 갓 건져 올린 손이 무슨 뜻이냐고, 손이 빼쪽한 사람은 왜 피아노를 잘 치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할머니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어쩌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피아노와 관련된 낭만적이거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감하기는커녕 무심하기 짝이 없던 열 한두 살 남짓의 아이는 내 손은 물에서 갓 건져 올린 것처럼 생겼나 보다, 어쩌면 앞으로 피아노 학원에 다닐 수도 있겠구나, 혼자 생각하고 말 뿐이었다.

그 뒤로 할머니는 만두를 빚을 때마다 허리가 아파 찾아간 병원에 간호사가 친절했다거나, 두부 가격이 올랐다거나, 옆집 아무개의 큰 손주가 시집을 잘 갔다더라는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만두피를 밀고, 만두를 빚고, 만두 엉덩이에 밀가루를 툭 찍어 쟁반에 올리는 단조로운 작업은 할머니에게도 무료했던 것 같다. 고즈넉한 부엌으로 슬그머니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 앉은 오후의 나른한 햇볕 속에서 아무 얘기라도 하지 않으면 만두를 빚을 수 없다는 듯이 할머니는 시장에 갔던 이야기, 동네 사람들 이야기, 먼 친척의 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이는 맞물린 만두피 밖으로 자꾸 비어져 나오는 소를 숟가락 자루 끝으로 밀어 넣느라 정신이 팔려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들은 늘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보내기 일쑤였다. 그렇게 흘려 들었어도 수십, 수백 번 흘려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귓가에 고인 말들은 할머니와 만두 빚던 그 시절의 풍경과 함께 고스란히 재생된다. 사람이 기술을 배워야 한다, 여자가 몸이 단정치 못하면 인생 망치는 법이다, 백 가지 재주를 가졌는데 그 중 하나도 빛을 못 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쇠도 씹어 먹을 나이에 먹는 것 남기면 못 쓴다, 내가 수원여전 다닐 때는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자장면을 두 그릇이나 먹곤 했다, 선죽교는 아직도 물 뿌린 뒤에 비질을 하면 핏자국이 드러난다…. 그 때 그 아이는 자신이 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해줄 수 있는 말에는 애정에서 비롯된 군걱정 가득 담긴 잔소리와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할머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살아낸 시간과 그 시간 속에 담긴 삶의 배경 같은 것들이 있다. 한 사람이 살아낸 시간은 짤막한 이야기로, 가끔은 이야기가 담긴 음식으로 전해지고 이렇게 전해진 것들이 쌓여 한 시대를 만든다. 모두가 알지 못하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각자의 시대가 모이면 역사가 될 것이고, 그렇게 하나의 시대는 다음의 세대로 이어진다. 안타깝게도 만두 빚는 부엌에 있던 아이는 귀에 꽂히는 잔소리만 골라 흘려 들었고, 삶의 배경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는 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후에야 개성식 만두는 한 입 베어 물기도 어려울 만큼 큼지막하다는 것,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함께 빚던 만두가 바로 개성식 만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할머니가 개성 출신이라는 것도,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납북된 후로 소식이 끊겼다는 것도 새삼스럽다 못해 사무쳐서 혼자 감탄사와 탄식 사이 어디쯤에 있을 짧은 한숨을 내쉬었더랬다.


집에 와 먹으려고 보니 어려서 할머니와 만들던 만두와 생김이나 크기가 똑 닮았다. 만두가 컸던 것일까, 내가 작았던 것일까.

퇴근 길에 저녁거리 사러 들른 시장에서 만두를 팔고 있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가게, 그 가게서 파는 손만두가 그날 따라 눈에 띄었다. 마트에서 간편식으로 파는 냉동만두 보다는 크고 할머니와 함께 빚어 먹던 만두 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였다. 처음부터 만두를 사려고 했던 것처럼 5개들이 고기만두 1인분을 사들고 돌아왔다. 아직 따끈한 만두를 접시에 옮겨 담고, 초간장을 만들고, 잘 익은 깍두기와 먹다 남은 소주 한 병을 꺼내 상을 차렸다. 만두피를 슬쩍 찢어 초간장을 흘려 넣은 다음 반으로 쪼개 한 입 베어 무니 입안 가득 부추 향이 퍼졌다. 유난히 부추가 많이 들어간 만두였다. 소주 한 모금으로 입을 헹구면서 이 댁의 만두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할머니는 소주도 곧잘 드셨는데. 할머니가 워낙 고기를 좋아해서, 할머니와 사는 동안 나도 고기에 맛을 들이는 바람에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게 된 거라던데. 자연스럽게 남의 집 만두에 얽힌 사연에 대한 호기심 뒤로 한 번쯤은 할머니의 만두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따라 붙는다. 만두 한 입 먹고 만두 레시피를 검색해 본다. 검색 화면 위로 만두에 대한 연관검색어와 만두 만들기 레시피를 소개하는 게시물들이 주루룩 펼쳐진다. "야채 싸 먹는 납작만두 비빔만두 만들기, 이거 뭔데 맛있어?", "만두 만들기 촉촉한 고기만두 레시피", "아이와 함께 김치만두 만들기"… 그 사이로 "만두소 만들기 속을 꽉 채운 만두 만들기"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보인다. 훑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어려서 먹던 그 만두 맛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 뿐이다. 기억 속에 잠들어 있는 그 만두를 깨우고, 만두를 만들 때마다 그 때의 맛과 지금의 맛을 비교하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만두 속에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나에게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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