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修洞 三十五番地 이야기 : 流浪船
그날도 비가 내렸다. 언제부터 오기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언제 그칠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축축한 마음을 품에 안고 처마 밑에서 비긋고 있었다. 여자 앞을 지나쳤던 사람이 되돌아와 우산을 접으며 처마 아래로 들어왔다.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보고 있네요.
-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은 봄이 아니어도 널려 있어요. 주워 담을 기력이 없어요.
어디서 파는지 살 수만 있다면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요. 파는 곳이 없어서 너무 비싼 걸까요.
아니면 너무 비싸서 파는 곳이 없는 걸까요. 이러나저러나 빚을 내고 싶어도 빚을 낼 수도 없어요.
이미 파산이에요.
- 혼자가 둘이죠. 그러면 외로운 게 아녜요.
그 사람*은 우산 끝으로 땅을 톡톡 두드리더니 이내 우산을 펼쳐 들고 처마 밖으로 나섰다. 조금씩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여자는 품고 있던 마음을 탁탁 털어 뒤집어쓰더니 처마 밖으로 나섰다. 그 사람이 멀어져 간 방향을 잠시 바라보던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돌아 나갔다.
그 사람: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문학과지성사, 2018년 12월 13일,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