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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l 13. 2020

치킨과 닭강정 사이에서 소주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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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나 치킨 집은 많다. 많고 많은 치킨 집 중에 한 곳, 지난해 받은 쿠폰에 천 원을 더 내고 닭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치킨을 먹었다. 깨끗한 주방, 잘 손질된 순살 닭고기를 타이머에 맞춰 익히고 본사에서 보내준 소스를 끼얹고 종이 상자에 담아 무와 작은 캔 콜라 하나를 부직포 가방에 담아 주는 곳. 보통의 치킨 맛. 굳이 따지자면 다른 치킨 집에서 파는 비슷한 이름의 치킨과 요모조모 다른 구석이 있었겠지만 굳이 이 치킨집이 아니어도 괜찮은 그런 보통의 치킨 맛이었다. 고급지다, 고급지다 광고를 하더니 정말 고급지게(?) 부직포 가방에 담아주는구나 싶어 굳이 사진을 찍었고, 사진을 찍으면서 시장 안 닭강정 집이 떠올랐다.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그때 떠올렸던 닭강정을 먹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일주일 사이에 두 번, 닭고기를 먹게 됐다. 혼자서 값을 치르고 먹을 수 있는 고기 중에 가장 저렴한 고기다. 우리 동네 시장에 닭고기를 파는 가게는 모두 세 곳, 모두 닭강정을 판다. 시장 입구에 있는 집은 제일 그럴듯한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데 맛이 없다. 두 번째 집은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닭강정을 파는 가게처럼 생겼는데 맛있다. 튀긴 떡볶이 떡을 얹어 주는데 똥집 튀김도 함께 판다. 똥집 튀김을 닭강정만큼 줘서 맛볼 엄두가 안 난다(하지만 꼭 맛 볼 테다). 세 번째 집은 첫 번째 집과 두 번째 집 사이에 있는데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파는 정육점이다. 정육점 한 편에서 닭강정을 판다. 첫 번째 집은 커다란 종이컵에, 두 번째 집은 종이 상자에, 세 번째 집은 김 봉지에 담아준다. 오늘은 세 번째 집에서 닭강정을 샀다. 맛은 고만고만, 가격도 고만고만한데 김 봉지에 담아 판다는 것 때문에 자꾸 마음이 끌린다.

순살 치킨이나 닭강정이나 엎어치나 메치나 닭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튀기고 양념에 무쳐 낸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는데 어디에 담느냐에 따라 값이 더 나가고 덜 나간다. 포장, 포장 값이다.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건 좀 슬픈 일이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정성이 들어간 만큼 포장도 달라지는 경우가 제법 많다. 어쩔 수 없이 복불복이 되어버린다. 빛 좋은 개살구를 고르는 것과 알찬 것을 고르는 것은 암만 들여다봐도 결국 복불복이다. 그러니까, 비싼 돈 주고 사 먹던 과자 한 봉지가 사실, 과자보다 질소가 더 많았다는 걸 알고도 무심히 넘겨버리는 일. 과자 회사에 질소를 먹으려고 과자를 산 게 아니라고 항의하지 않는 일, 그저 과자보다 질소로 채워진 과자 한 봉지를 산 자신을 비하하며 웃어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대체 무얼 먹고 싶었던 걸까.



요리법이 달라져도 주 재료가 닭고기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깜빡 타이밍을 놓쳐 태울 수도 있고, 집중해서 ‘깨 뿌리기’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다. 잘 만들어진 요리든 실수가 좀 섞인 요리든 주 재료가 닭고기라는 건 안 변한다니까. 닭고기가 갑자기 오리 고기나 소고기가 될 수는 없잖아. 그렇잖아? 그런 재주가 있으면 돌을 금으로 만들어야지. 실은 저 닭고기가 소고기였다고 우길 게 아니라.


그런데 왜 닭 요리들이 한 곳에 모여 자꾸 자기는 소고기 맛이 나는 닭요리다, 오리 고기의 풍미를 지닌 닭요리다, 돼지고기 앞다릿살의 식감을 가진 닭요리다 싸우는지 모르겠다. 그래 봤자, 닭요린데. 사실, 동물복지를 지켜서 어쨌다는 고기들도 잘 모르겠다. 면피하려고 하는 말 같아. 정말 ‘복지’라면 그 동물들이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잡아먹을 게 아니라.


‘우린 같은 닭이야’라고, 양 어깨를 쥐고 흔들며 소리를 쳐도 도통 들어먹질 않는 닭 대가리들을 보면서 기운이 쭉 빠졌다가 부아가 치밀다가 눈물이 쏟아지길 반복했던 일주일이었다. 쟨 깃털이 좀 예쁘고, 얜 깃털이 좀 짧고, 또 저 애는 부리가 뭉툭하고 이 애는 꼬리 깃이 화려하고… 쟨 남자를 좋아하고 얜 여자를 좋아하고 저 애는 남자가 되고 싶고 이 애는 여자가 되고 싶고… 엎어치나 메치나 그냥 닭이고 사람인데 도통 들어먹질 않는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걸.까. 먼 훗날 언젠가의 어느 날 누군가 발견하게 될 화석은 온통 닭뼈뿐일 거라고 하던데, 이런 비유에 데려다 놔서 미안해, 닭아. 아, 또 샜다….


간밤이 뿌리고 간 비를 이어받아 종일 비가 내렸다. 서늘한 바람이 온종일 불어댔다. 서늘한 말과 슬픈 말들이 온종일 둥둥 떠다녔다. 온종일 ‘백만 송이 장미’를 흥얼거린 날이었다.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날이었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려야 줄 수가 없고, 당연하게도 백만 송이 꽃은 피지 않고, 내 별나라가 어딘지는 몰라도 그립고 아름다울 게 분명한 내 별나라로 갈 수 없을 테니까. 이번 생은 글렀다. 하지만 내세가 글러먹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냥 이번 생에서 어울렁 더울렁 같이 좀 살면 안 될까. 닭끼리 닭싸움해봐야 다 자빠지고 말 거를, 발목이나 삐고 인대나 늘어날 거를, 뭣 헌다고 자꾸 닭싸움을 해쌓고….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일이, 잘못에 책임지는 일이 언제부터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 된 걸까. 책임과 비겁이 이음동의어가 된 건 언제부터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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