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a Writ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 Jul 13. 2020

치킨과 닭강정 사이에서 소주를 마시다

Aa Writer

어느 동네나 치킨 집은 많다. 많고 많은 치킨 집 중에 한 곳, 지난해 받은 쿠폰에 천 원을 더 내고 닭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치킨을 먹었다. 깨끗한 주방, 잘 손질된 순살 닭고기를 타이머에 맞춰 익히고 본사에서 보내준 소스를 끼얹고 종이 상자에 담아 무와 작은 캔 콜라 하나를 부직포 가방에 담아 주는 곳. 보통의 치킨 맛. 굳이 따지자면 다른 치킨 집에서 파는 비슷한 이름의 치킨과 요모조모 다른 구석이 있었겠지만 굳이 이 치킨집이 아니어도 괜찮은 그런 보통의 치킨 맛이었다. 고급지다, 고급지다 광고를 하더니 정말 고급지게(?) 부직포 가방에 담아주는구나 싶어 굳이 사진을 찍었고, 사진을 찍으면서 시장 안 닭강정 집이 떠올랐다.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그때 떠올렸던 닭강정을 먹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일주일 사이에 두 번, 닭고기를 먹게 됐다. 혼자서 값을 치르고 먹을 수 있는 고기 중에 가장 저렴한 고기다. 우리 동네 시장에 닭고기를 파는 가게는 모두 세 곳, 모두 닭강정을 판다. 시장 입구에 있는 집은 제일 그럴듯한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데 맛이 없다. 두 번째 집은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닭강정을 파는 가게처럼 생겼는데 맛있다. 튀긴 떡볶이 떡을 얹어 주는데 똥집 튀김도 함께 판다. 똥집 튀김을 닭강정만큼 줘서 맛볼 엄두가 안 난다(하지만 꼭 맛 볼 테다). 세 번째 집은 첫 번째 집과 두 번째 집 사이에 있는데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파는 정육점이다. 정육점 한 편에서 닭강정을 판다. 첫 번째 집은 커다란 종이컵에, 두 번째 집은 종이 상자에, 세 번째 집은 김 봉지에 담아준다. 오늘은 세 번째 집에서 닭강정을 샀다. 맛은 고만고만, 가격도 고만고만한데 김 봉지에 담아 판다는 것 때문에 자꾸 마음이 끌린다.

순살 치킨이나 닭강정이나 엎어치나 메치나 닭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튀기고 양념에 무쳐 낸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는데 어디에 담느냐에 따라 값이 더 나가고 덜 나간다. 포장, 포장 값이다.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건 좀 슬픈 일이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정성이 들어간 만큼 포장도 달라지는 경우가 제법 많다. 어쩔 수 없이 복불복이 되어버린다. 빛 좋은 개살구를 고르는 것과 알찬 것을 고르는 것은 암만 들여다봐도 결국 복불복이다. 그러니까, 비싼 돈 주고 사 먹던 과자 한 봉지가 사실, 과자보다 질소가 더 많았다는 걸 알고도 무심히 넘겨버리는 일. 과자 회사에 질소를 먹으려고 과자를 산 게 아니라고 항의하지 않는 일, 그저 과자보다 질소로 채워진 과자 한 봉지를 산 자신을 비하하며 웃어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대체 무얼 먹고 싶었던 걸까.



요리법이 달라져도 주 재료가 닭고기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깜빡 타이밍을 놓쳐 태울 수도 있고, 집중해서 ‘깨 뿌리기’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다. 잘 만들어진 요리든 실수가 좀 섞인 요리든 주 재료가 닭고기라는 건 안 변한다니까. 닭고기가 갑자기 오리 고기나 소고기가 될 수는 없잖아. 그렇잖아? 그런 재주가 있으면 돌을 금으로 만들어야지. 실은 저 닭고기가 소고기였다고 우길 게 아니라.


그런데 왜 닭 요리들이 한 곳에 모여 자꾸 자기는 소고기 맛이 나는 닭요리다, 오리 고기의 풍미를 지닌 닭요리다, 돼지고기 앞다릿살의 식감을 가진 닭요리다 싸우는지 모르겠다. 그래 봤자, 닭요린데. 사실, 동물복지를 지켜서 어쨌다는 고기들도 잘 모르겠다. 면피하려고 하는 말 같아. 정말 ‘복지’라면 그 동물들이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잡아먹을 게 아니라.


‘우린 같은 닭이야’라고, 양 어깨를 쥐고 흔들며 소리를 쳐도 도통 들어먹질 않는 닭 대가리들을 보면서 기운이 쭉 빠졌다가 부아가 치밀다가 눈물이 쏟아지길 반복했던 일주일이었다. 쟨 깃털이 좀 예쁘고, 얜 깃털이 좀 짧고, 또 저 애는 부리가 뭉툭하고 이 애는 꼬리 깃이 화려하고… 쟨 남자를 좋아하고 얜 여자를 좋아하고 저 애는 남자가 되고 싶고 이 애는 여자가 되고 싶고… 엎어치나 메치나 그냥 닭이고 사람인데 도통 들어먹질 않는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걸.까. 먼 훗날 언젠가의 어느 날 누군가 발견하게 될 화석은 온통 닭뼈뿐일 거라고 하던데, 이런 비유에 데려다 놔서 미안해, 닭아. 아, 또 샜다….


간밤이 뿌리고 간 비를 이어받아 종일 비가 내렸다. 서늘한 바람이 온종일 불어댔다. 서늘한 말과 슬픈 말들이 온종일 둥둥 떠다녔다. 온종일 ‘백만 송이 장미’를 흥얼거린 날이었다.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날이었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려야 줄 수가 없고, 당연하게도 백만 송이 꽃은 피지 않고, 내 별나라가 어딘지는 몰라도 그립고 아름다울 게 분명한 내 별나라로 갈 수 없을 테니까. 이번 생은 글렀다. 하지만 내세가 글러먹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냥 이번 생에서 어울렁 더울렁 같이 좀 살면 안 될까. 닭끼리 닭싸움해봐야 다 자빠지고 말 거를, 발목이나 삐고 인대나 늘어날 거를, 뭣 헌다고 자꾸 닭싸움을 해쌓고….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일이, 잘못에 책임지는 일이 언제부터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 된 걸까. 책임과 비겁이 이음동의어가 된 건 언제부터인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무말랭이&수육보쌈과 와인을 마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