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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Aug 30. 2020

고르곤졸라 피자와 사이다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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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술집에서 소주, 맥주, 막걸리도 아닌 사이다를 마시는 날도 오게 된다는 걸 알고 싶지 않았다. 위에 살고 있다는 균을 죽이려고 강력한 항생제를 7일간 하루에 두 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먹어야 했고 7일간 술도 마시면 안 되었다. 어차피 술을 마시지 못한 게 한 달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한 잔도 아니고 한 모금, 갈증이 가실 만큼 마시긴 했지만 매일 마시던 것을 생각하면 체감 상으론 반년쯤 금주한 기분이 들었다.


ㅇ이 오랜만에 공연을 했고, 준비하는 내내 관람을 권했고, ㅇ의 공연을 보았고, ㅇ과 아무도 없는 술집에 마주 앉았다. ㅇ은 막걸리를 마시고 싶어 했는데 막걸리는 어쩐지 술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 입술을 조금 축여 보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맙소사, 내가 이렇게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얼큰하게 기분이 좋아진 ㅇ과 그 옛날처럼 스티커 사진을 찍었고 조금 더 기분이 좋아진 ㅇ은 맥주를 마시고 싶어 했고, ㅇ과 제법 북적이는 맥주집에 마주 앉았다. ㅇ은 셔벗 같은 맥주를, 나는 사이다를 마셨다. 하아… 고르곤졸라 피자는 맛이 없었고 사이다는 너무 달았고 취한 ㅇ이 권하는 셔벗 맥주 한 쪼롭을, 쪼로록도 아니고 쪼롭을, 쌍욕과 함께 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ㅇ과 제법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술 같은 건 애초에 대화의 영양 성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술은 그저 핑계일 뿐인데 늘 핑계를 앞세우기 급급하니 별별 사단이 다 나는 거라고, 어쩌면 세상에 술을 제대로 배우고 즐기는 사람은 몇 없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식어버린 고르곤졸라 피자의 두꺼운 도우를 씹었다. 고르곤졸라 피자가 맛이 없을 수도 있구나.


그나저나 이미 금주라는 저주(?)는 풀렸다. 그러나 선뜻 울타리 밖으로 발이 내디뎌지지 않는다. 이 변화가 낯설어서 한 동안은 술을 조금 멀리하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멀리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다 보면 ‘이런 걸’ 가지고 고민하게 될 날이 오게 된다는 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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