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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04. 2024

카레시 통닭다리 수프카레와 참이슬 클래식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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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허든 한 끼를 때우는 것이 필요했다. 이 한 몸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데 이렇게나 많은 쓰레기가 나와야 한다면 이 한 몸 없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이 한 몸'이 살고 싶어 하는 것을 안 이상 어떡허든 먹이고 재우고 입혀야 했다. 그래서 떠올린 꼼수가 밀키트였다. 밀키트라고 해 봐야 편의점에서 구입하는 간편식이 전부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밀키트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식단 때문이었다. '식단'이라고 하면 꽤나 멋지게 들리지만 탄수화물보다 단백질 비율을 늘린 것이 전부인 하찮은 식단이었다. 1인가구로서 채소와 단백질과 약간의 탄수화물을 뜻대로 챙겨 먹기란, 이 한 몸 없는 게 낫다 싶을 만큼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과감히 채소를 포기하면 단백질 비율을 높이고 탄수화물은 낮춘 식단을 -물론 여기서 알코올은 디폴트다- 먹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다. '아유, 할 일도 많은데 세상만사 귀찮아다' 싶을 때는 편의점을, 그냥 '세상만사 귀찮지만 뭔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걸' 싶을 때는 마트-동네 마트, 이마트, 그리고 마켓컬리-에서 밀키트를 산다. 오늘의 한 끼는 마켓컬리 제공, 이름마저 으리으리(?)한 카레시 통닭다리 스프카레와 참이슬 클래식이다.



진짜 통닭다리가 제법 신선해 보이는 -냉동인 채로 신선해 보이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는 것은 당신도 어엿한 1인가구!- 채소들과 함께, 무려 좋아하는 브로콜리도 함께 묽은 카레 국물에 담겨 있는 한 그릇이 완성되었다. 해동 과정이 지리했으나, 뭐, 해동 이후부터는 대부분 전자레인지가 해결해 주었고 애증의 채소만 프라이팬에 볶아주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통닭다리의 위용은 자잘한 수고를 하찮은 수고로 여기게 만들기 충분했다. 


최근 자신의 한 끼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내 한 끼를 걱정해주고 있는 P가, 아니나 다를까 내 한 끼의 안부를 물어왔고 나는 제법 당당하게 사진을 보내었는데 P가 직접 요리한 것으로 오인할 만큼 풍성하고 푸짐한 한 끼였다. 나도 처음 맛보는 '카레시'니 '수프카레'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먹는 것도 보는 것(영화)도 재료(감독배우)만 보고 무작정 시도하는 편- 푸짐하고 맛 좋아서 안성맞춤이라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어 좋았다.


하루에 두 끼 챙기는데, 삼시세끼 중 한 끼를 덜어도 끼니 챙기는 일은 참으로 고되다. 메뉴 선정부터 먹고 치우는 일까지. 자고로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니까. 닦고 쓸고 치우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 설거지쯤이야 물놀이나 다름없지만 그 앞 단계는 참으로 고단한 것이다. 어느 때는 이 밀키트마저 번거롭고 수고로워 밖에서 먹는 경우가 많으니, 고단함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건 오직 1인가구뿐이려나.


어쨌든, 이름도 길어 기억하기 어려운 카레시 통닭다리 수프카레와 참이슬 클래식 덕분에 한 끼를 무사히 지나 보냈다. 밀키트 연구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계속 정진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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