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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04. 2024

03-230512

Cocktail Blues

깊고 깊은 바닷속을 걷다 보면 심해어 한 마리쯤 만날 수 있겠지, 더듬이에 불빛이 나오는 물고기도 있다지, 그 더듬이는 바로 앞만 비출 테니 마치 손전등으로 제 얼굴을 비추는 것처럼 무섭겠지, 하지만 우리 자몽은 귀여워야 해.

아무튼 처음 만난 자몽은 다정했다. 내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들어주었고, 내가 아프다고 하면 미간을 찌푸렸고, 내가 슬프다고 하면 더듬이의 불빛을 모스 부호처럼 깜빡깜빡까암빡깜빡까암빡거려 주었다. 몽글몽글 물방울 같기도, 물컹쫀득 물풍선 같기도 한 우리 자몽.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는 '아, 내가 이런 삶을 사느라 고되었구나' 싶었다. 뭣하러 그리 고되게 살았을까. 나 또한 내 등을 떠밀었겠으나,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내 등을 떠밀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별다른 감정은 남아 있지 않으나 이유는 알고 싶었다. 이유를 알고 나면 등 떠밀린 나를 탓할 수도, 그들과 대차게 대거리하지 않은 나를 탓할 수도, 속도 없이 등 떠밀린 나를 보듬을 수도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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