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교수님의 따뜻한 온정에도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평생 가는데
대학교 때 친구들은 겉친구래~’
하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인가,
대학 친구들에게 마음이 잘 열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나의 가치관이 맞지 않은 탓도 있었을 테다.
내가 듣는 수업들 또한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두꺼운 책을 사물함 한구석에 처박아 놓고
한켠에 나 대신 수업을 들어줄 복제인간 하나 만들어 놓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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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한 대학 생활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 말만 되뇌며
점점 학교에 대한 마음은 멀리 떠나갔고
대신 내가 마음을 붙인 곳은 교회였다.
교회만이 그나마 대학교 이름 떼어놓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인 거 같았다.
내가 다니는 대학이 어디든 평가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
물론 평가를 겉으로 티 내지 않는다고 속으로도 하지 않는 건 아닐 테다.
일전에 말했던 학교 이름을 본명 대신 부르던 오빠 하며, 같은 캠퍼스끼리 묶어 모임을 하던 것도 있었으니까.
나 또한 겉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보면 대학교 이름부터 떠오르곤 했으니,
네임벨류가 높든 낮든 평가한다는 것 자체만큼은 모두 다를 바가 없이 똑같겠거니 생각했다.
이 또한 내 자격지심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ㅡ
교회에서 좋은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려있다 보면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런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쓸데없는 우월감에 취해있을 때도 있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생각은 안 하고,
내 주변에 멋진 사람들이 있으니 비교를 하며
학교가 점점 더 우스워보이는 효과가 더해졌었다.
특히나 학교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 피우고 침 뱉는 모습을 볼 때면
‘저렇게 사니까 우물 안 개구리지.’같은 생각도 했다.
나 또한 그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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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행복했을 스무 살,
그 무렵 친구들은 고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텐션이 올라갈 뿐
고민을 내어놓거나 서로의 고충을 들어주는 시간은 없었다.
<김동률 - 취중진담>
대학생이 되기 전, 그토록 많이 들었던 노래다.
술에 취해 진심을 턱턱 내놓을 줄 알았던 내 상상과는 달리, 현실은 고라니 소리를 내는 친구들 뿐이었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카페에서 도란도란 앉아
몇 시간이고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의 마음을 가깝게만 만들었다.
내 마음이 더 기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ㅡ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가식덩어리였다.
그 많은 진솔한 이야기 중
‘난 당신들의 대학 생활이 부러워요’ 따위는 없었으니까.
글쎄 나는 과연 진솔한 대화를 했던 게 맞았을까?
그리고 그들 또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들을 꺼낸 게 맞았을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교회‘라는 공동체,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와 친해진 교회 친구 중 한 명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난 교회에 잘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우리 학교가 너무 부끄러워.
나 이 상태로 교회를 다니고 싶지 않아.
편입 성공하기 전까지 교회에 안 나올래. “
그 친구는 나에게만 저 이야기를 했다.
나와는 가끔 밖에서 만났지만
교회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편입에 성공해 좋은 곳에 취업도 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나였을까?
내게만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었을까?
나는 그 친구 또한 나처럼
진솔한 척했던 사람이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알아차렸던 것이다.
대학이 세상을 구분 짓는 판가름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런데 나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나에게만은 솔직했던 그 모습이,
용기내어 편입을 결정했던 그 모습이,
본인 위치를 인정하고 궁시렁대지도 안일하지도 않는 그 모습이,
나와는 너무 달랐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 친구처럼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이때는 솔직함이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이었으니까.
가짜 자존감이더라도 나는 지켜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