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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Mar 07. 2020

자기계발서만 읽다가 늙어 죽을 것 같은 대한민국 젊은이

브런치에서 글을 기고하고 있는 작가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작가로서의 최고의 기쁨은 이름 모를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었을 때다. 조회수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바로 독자들의 공감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글을 수고롭게 다시 한 번 클릭해 공감 버튼을 누르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많은 글을 써내지는 못했지만 나의 작고 소중한 브런치 공간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어낸 글은 바로 '늦어도 괜찮아'였다. 본인이 늦은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사람인지라 같은 고민을 하는 나를 위해 써낸 글이었다.


하지만 그 글이 가장 많은 반응을 얻은 것에 마냥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 글에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타인의 인생을 나이만으로 재단해온 아무개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로와 더불어 새로운 희망을 얻기 위해 나의 글을 클릭했을 것이고 공감했을 것이었다.


대한민국에 자기 계발서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베스트셀러로 자기 계발서의 조상급인 에세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반 친구들의 책상 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아픔이 당연시되는 사회 속에서 대한민국에서 존경을 받는다 하는 명사들은 너도 나도 비슷한 류의 에세이를 출간해냈다.


이런 자기 계발서들을 개인적으로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한 인물의 이력이나 삶을 풀어낸 에세이에서 나만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는 있을지언정, 성공한 사람이 미화된 과거를 떠올리며 읊어낸 문장이 꼭 옳은 듯이 평가되고 회자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이 정말 젊은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 또한 의구심을 품게 되는 부분이다. 한 때, 도움이 될 만한 강연을 찾아다녔던 적이 있지만 명사들의 강연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시간은 극히 드물었다. 몇몇 연사는 자신의 강연을 듣기 위해 강연 장소까지 찾아온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기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기 바빴다.

이런 일련의 경험들로 기성세대에게 상처 받은 젊은이들이 그들이 출판한 책과 강연을 소비해 또다시 기성 새대의 배를 불리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들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엄격한 규율과 편견들에 마음을 다친 젊은이들이 자기 계발서를 통해 위로를 얻었으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깨달아야 한다. '떠났다 올 사람은 오더라' 따위의 제목을 가진 처세술에 대한 짧은 글 한 편이 과연 정말 자신을 계발시킬 수 있을까?

부와 명예를 쥔 유명인이 쓴 책을 소비한다고 나의 삶이 달라질까? 젊은이들은 진정한 자기 계발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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