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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Mar 24. 2020

나도 방관자다

수면 위로 드러난 텔레그램 N번방

  요 며칠 역겨움에 속을 게워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꽤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온 일임에도 쉬쉬하던 언론의 태도가 그러했다.


  국민청원이 200만 명을 돌파하니 이제야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았던 걸까.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처럼 너도나도 몰려드는 꼴이 우스웠다.


  접속자가 26만 명이랬던가. 어제 스쳐 지나가며 봤던 어떤 이의 트윗이 떠오른다. 만 명의 감염자에 온 나라가 뒤집혔는데 26만 명의 범법행위에는 온 나라가 침묵하고 있다는 거였다.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텔레그램 탈퇴'가 오르는 걸 보면서 더욱 참담해졌다.


  제일 역겨운 건 나 스스로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 같지 않은 이야기들에 눈과 귀를 닫아왔다. 내가 여자인 이상, 어쩌면 나의 일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이 아닐 거라고, 허황된 도시괴담이라고 생각했다.


  '박사'라 불리는 금수만도 못한 놈과 그에게 돈을 입금한 N번방 이용자들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에 퓨즈가 끊긴 것처럼 머릿속이 잠시 멍해졌다. 나도 죄인이었다.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방관자였으니까.


  엄한 사람들이 죄책감과 고통을 느끼는 동안, N번방 입장자들은 본인의 계정을 인증하며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서슴지 않고 있고, N번방의 조상 격인 '갓갓' 또한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이제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 26만 명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어째서 한순간의 쾌락에 양심을 팔아넘긴 걸까.


    텔레그램 N번방은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스스로를 방관자라 생각하며 자책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쓰라리게 하고 있다.


  26만 명의 신상이 전원 공개되리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늘 가슴속에 새기는 말이

있다.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과거에 저지른 실수는 늘 미래의

나를 곤란하게 했고 과거에 베풀었던 선행이 좋은 결실을 맺어 돌아왔던 적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실컷 웃어라. 하지만 당신이 저지른 죄, 분명 부메랑처럼 미래의 당신을 옥죌 것이다. 똥줄 타서 '텔레그램'이니 'N번방'이니 검색하다 내 글을 보게 될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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