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번듯한 직업이 없는 프리랜서이자 파트타이머였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늘 한 사람이 몸을 겨우 뉘일만한 연습실 한칸에서 노래연습을 하거나 작업을 했다. 그의 작업실을 우연히 들른 적이 있다. 지하의 작은 공유 연습실의 한 칸을 빌려쓰고 있었던 그는 나에게 피아노를 쳐주었었다. 술도 못먹는 둘이 이자카야에서 생과일 소주를 거나하게 마신 터라 새벽의 그 피아노 소리에 괜스레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그럼에도 그가 좋았던 건 내가 갖고 있지 않던 많은 것들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번듯한 직업이나 야망은 없었을
지언정 그는 늘 차분했고 그런 온화한 에너지로 불같은 나를 다독여줬다. '열등감'이라는 단어는 그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듯 했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핑계를 대고 일을 빠지거나 늦는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새로운 직장에 얼마 전 둥지를 트고, 회사에서 오래된 차 한 대를 받았다. 마침 차를 사고싶어 저축을 하던 차에 출퇴근길이 편해질 것 같다며 그는 아이처럼 설레여 했다.
그와 함께 하는 첫 드라이브길, 그는 운전에 집중하느라 나의 말에 대답해주지 않았고 팔짱을 끼면 집중이 안된다며 빼달라고 정중히 요청해 날 퍽 섭섭하게 하였지만, 그래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긴장해서 귓바퀴까지 빨개져 있는
그의 귀를 발견한 탓이다.
우리는 짧은 시간 함께했지만 꽤 많은 처음을 공유했다. 많은 곳을 함께 다녔고, 많은 음식을 먹었고, 인생에서 새로운 일이 있을때마다 서로를 축하해주고 다독여줬다.
우리가 공유했던 '처음'들이 미래에 서로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