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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Apr 03. 2020

스물아홉 생일

    생일에 관련한 수많은 추억들이 있다. 졸업한 고등학교에는 '텔레토비 동산' 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는데, 학교의 가장 낮은 건물 옥상에 마치 텔레토비에 나오는 불룩한 동산처럼 정원을 꾸며놓은 곳이었다. 친구들과 나는 점심시간이나 석식시간에 자주 산책을 하고는 했는데 물론 그곳에서 생일 축하도 받았다. 청명한 하늘과 케이크 박스 위에 케이크를 올리고 노래를 불러주던 친구들의 모습은 아직도 선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친구들은  생일 즈음이 되면 항상 나를 위해 모여주곤 했다. 그중 이태원에서의 생일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스로의 주량도  모를 스물두어 살, 이태원에서 외국인만 있는 펍에서 칵테일  잔을 마시고 지하철 종점까지 잠들었던 때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기억이다.  이후로 나는 스스로의 주량이 형편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스물 다섯 생일에는 지금은 절교했지만 아직도 사랑하는  친구가 명품 화장품을 선물해줬었다. 튤립 다발과 함께.  우연히도  화장품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지금, 대학생이 큰맘 먹고 샀을  제품의 가격을 보며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죄스러움을 느낀다.


  생일이란 무엇일까. 어렸을 때는 날짜만 꼽으며 기다렸던, 마치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듯한 날이었다. 지금은 사실  생각이 없다. 내가 엄마의 미역국을 받아먹을 자격이 있는 건지,  생일의 주인공은 사실 내가 아닌 엄마라는 생각도 든다.


  항상 시끌벅적했던 생일이 올해는 조용했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세무서에 들렀다가 근처 카페에서 일을 했다. 직장인을 위한 엑셀 실무 책을 한 권 사서 핫도그를 포장해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호화로운 생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생일보다 행복한 날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있다. 지인들의 소소한 축하와 선물도 받았고 정말 예쁜 벚꽃길에서 벚꽃도 봤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깨닫는다. 행복이란 것은 정말   없다.


생일날 좀처럼 볼 수 없던 만개한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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