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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Aug 25. 2020

지속 가능한 미디어를 꿈꾸며

정혜승의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북 리뷰



누가 뭐래도 요즘은 인플루언서의 시대다. 일개 개인의 게시물 하나가 브랜드의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팔로워들의 관심을 끌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인플루언서들은 팀으로, 혹은 회사에 소속되어 움직인다.


이렇게 경쟁이 과열한 현 세태에서 6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계정이 단순한 인플루언서 계정이 아닌 소비자 계정이라면 더 어려워질 수 있는 이야기다. 쇼핑몰 임블리의 소비자 고발 계정인 임블리 쏘리(@imvely_sorry)는 그래서 특별하다. 작년 대표적인 여성 쇼핑몰 임블리의 논란의 중심에는 임블리 쇼핑몰 VIP 출신인 계정주 임블리 쏘리가 있었다. 가장 큰 지지자가 돌아서면 위협적인 적이 된다는 말처럼, 그녀는 쇼핑몰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가족을 향한 익명의 악플과 근거 없는 비방으로 현재는 계정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팔로워 6만 이상을 보유한 소비자 고발 계정 임블리쏘리

비양심 업체 및 제품 리뷰로 알려진 유튜버 사망 여우도 이러한 소비자 고발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LED 마스크로 알려진 국내 유수 업체와 대표적인 크라우딩 펀딩 업체를 여러 번 다뤄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유튜버 사망 여우 또한 업체의 고소 등 협박의 위협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믿고 보는 공익 채널 사망여우 TV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본래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일반인이 아닌 언론이 아니던가? 언론이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언론이 아니라는 것, 공익 계정이 소비자의 큰 인기와 신뢰를 얻고 있다는 강력한 반증이다.


처음 정혜승의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를 구입한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기자 출신이지만 포털사이트 다음으로 옮겨가 대외 협력을 담당했고, 카카오에서는 부사장을 역임한 미디어 전문가. 하지만 관심이 갔던 그녀의 이력은 바로 청와대에 합류하여 디지털 소통센터를 이끄는 한편 국민청원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 정권을 좋아했던 편이지만 최근 보여줬던 일련의 행보들은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문 정권의 대표적인 혁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국민청원이 어떻게 실행되게 되었는지, 그 고충은 무엇이었는지 알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후반부에 저자가 청와대에 입성하며 겪은 다양한 상황과 국민청원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담겨있었지만 이 책의 중점적인 내용은 바로 미디어의 변화와 그에 따라 미디어가 취해야 할 자세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특히 올드미디어가 어떻게 추락하게 되었는지, 또한 선망받던 기자 집단이 '기레기', '기렉시트' 등의 신조어를 생성하며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현실을 냉정하게 꼬집는다.


 어느 정도 트래픽을 낚을 수 있다면, 이는 매출과 직결된다. 같은 기사를 반복해서 보내거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맞춰서 같은 키워드를 넣어 만드는 어뷰징 기사는 저널리즘을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여겨졌다.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p.37


저자는 올드미디어와 기자의 위상이 추락한 원인을 트래픽에 연연하여 공장의 물건을 찍어내듯 쏟아지는 어뷰징 기사, 팩트체크 없는 보도라고 말한다. 콘텐츠 없는 '질보다 양' 위주의 기사의 문제점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 언론 시장의 환경은 나빠짐에도 등록 언론사 수는 오늘도 증가하고 있다는 모순 또한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뉴 미디어는 고전하고 있는 올드미디어를 넘어섰다. 국내 상황을 예로 들자면, 이제는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유튜브와 카카오톡이 뉴미디어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2019년 기준으로 약 1,750만 명에 달하는 네이버의 SNS 커뮤니티 밴드와 느슨한 커뮤니로 불리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 등 매일 다양한 플랫폼이 올드 미디어를 위협하고 있다.


올드 미디어가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니 명성을 되찾지는 못해도 '언론다운'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국내 미디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1) 매체 구독과 함께 기자 구독의 시대로

저자는 국내의 올드 미디어가 위축되며 기자 또한 위축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의를 바로잡아야 할 소명의식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스타 기자' 육성을 주저하는 매체의 자세 또한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기자를 브랜드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진 기자가 성장할수록, 그 기자가 소속된 매체의 영향력 또한 증가하게 된다.


2)  몰입 저널리즘(immersive journalism)과 리스티클(listicle)

독자들은 더 이상 뻔한 복붙 기사를 원하지 않는다. 더 나은 생생함과 정보적 우위를 원한다. 그런 차원에서 등장한 것이 분쟁 지역의 직설적인 이야기를 담은 몰입 저널리즘과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음식 10가지' 등 리스트와 기사를 합친 형식의 리스티클이다. 저자는 이와 함께 미국에서 창간한 IT 전문 매체 '인포메이션' 등 유료 구독 매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굳이 내 주머니를 털어도 아깝지 않을 만한 기사를 내는 것이 국내 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3) 뉴스페이퍼(newspaper)가 아닌 뷰스 페이퍼(viewspaper)

흔히 뉴스라고 하면 공정성을 가장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봐야 할 신문은 사실만을 담은 뉴스페이퍼가 아닌 관점을 담은 뷰스 페이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객관적 저널리즘에 갇혀 올드 미디어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매체로 퇴화했다.


올드 미디어가 쇠퇴하고 뉴 미디어가 주목받는 현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올드 미디어의 모습을 소개하며 저자가 궁극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개념은 '지속 가능한 미디어'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는 미명 아래 종이 신문을 없애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존심은 지키되, 매력적이어야 한다.


언론보다 인플루언서를 믿을 수밖에 없는 세상, 저자가 말하는 지속 가능한 미디어의 신념을 실현하는 매체의 등장이 어느 때보다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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